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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당신의 주말은 무슨 색이었나요? (10-8-土, 맑음) 본문

일상

당신의 주말은 무슨 색이었나요? (10-8-土, 맑음)

달빛사랑 2022. 10. 8. 03:15

 

당신의 주말은 무슨 색이었습니까? 나의 하루는 맑은 소주 색이었다가 몽롱한 노란색이었다가 결국에는 다시 빗물처럼 투명한 색으로 끝났습니다. 풍물패 너늠의 ‘광대의 꿈’ 공연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늘 보던 예인들의 늘 보던 공연이었지요. 물론 갈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소중한 주말 오후를 신포동에서 보낸 것은 순전히 의리 때문이었지요. 그래요. 이번 공연은 후배가 기획한 공연이어서 공연 자체를 보기보다는 응원하러 간 거라 말할 수 있습니다. 다소 진부한 공연이었지만 그마저도 무대에 세우기까지는 많은 땀방울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도무지 왜 공연 주제가 ‘광대의 꿈’이었는지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풍물은 언제 봐도 흥이 나잖아요. 보는 내내 어깨를 들썩이며 열심히 박수를 보내기는 했습니다. 공연은 1시간 15분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로비로 나오자 떡을 하나씩 나눠주더군요. 그런대로 떡은 맛있었습니다.

 

오늘 같은 자리에 가면 항용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뻔한 공연 내용처럼 새로울 게 없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이 사람들을 만나면 늘 반갑습니다. 그들 또한 나처럼 의리로 공연을 찾은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공연장인 한중문화원을 나와서 창수 형, 수홍 형, 성섭 형과 ‘신포동집’으로 이동해 저녁을 겸해 술을 마셨습니다. 마치 짠 것처럼 30분쯤 지나서 재단 본부장 동혁과 영화감독 권칠인 형, 사진작가 김영욱 등이 들어왔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남이 형, 민예총 사무처장 성창훈이 합석했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최후로 후배 창길이가 합석해 총 10명이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셨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세 테이블에 나눠 앉아 각각 술 마시다 먼저 가는 사람(집이 용인인 권칠인 형이 먼저 일어남)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합석한 거지요. 사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앉아서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붓하게 모여 조곤조곤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요. 이때까지의 색깔이 소주 색이었지요.

 

그곳을 나와 ‘사운드 바운드’(신포동 일대의 카페마다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행사)가 열리고 있는 곳 중, 규영이가 운영하는 ‘루비 살롱’에 들러 록 밴드 ‘써드스톤’ 공연을 구경했습니다. 제 귀가 감당하기에는 전자기타와 드럼 소리가 정말 버겁더군요. 두어 곡 듣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수홍 형과 둘이서 홍예문 근처 ‘팜 트리’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곳도 젊은이들이 들어차 시끌벅적하더군요. 연휴 전야이기도 하고 밴드 공연 행사가 진행되는 중이라서 그런지 어디를 가도 만원이었습니다. 그래도 ‘루비 살롱’보다는 나았습니다. 사장인 인아 누나의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을 보면서 세월이 참 훅하고 흘렀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년 전부터 들른 곳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팜 트리’에서 30분쯤 앉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창수 형과 창길이로부터 연이어 전화가 왔습니다. 일단 어디냐고 물었고 뒤이어 일행들은 모두 ‘흐르는 물’로 이동해 ‘하이미스터메모리’와 ‘허영택’의 공연을 보고 있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어요. 수홍 형은 그냥 ‘팜 트리’에 남아 있고 나만 ‘흐르는 물’로 이동했습니다. 이때까지의 색깔은 카프리 맥주처럼, 혹은 막 색이 변하기 시작하는 은행잎처럼 옅은 노란색이었습니다.

 

밴드의 성격 때문이었겠지만 ‘흐르는 물’의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조용했습니다. 어쿠스틱 기타와 아코디언이 만들어내는 화음이 가을밤과 무척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아코디언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 같아요. 문득 얼마 전에 작고한 아코디언 연주가 심성락 선생이 생각났습니다. 이곳에서는 제법 긴 시간 머물렀습니다. 술 취한 남이 형과 창훈이가 먼저 가고, 공연이 끝난 후 아내와 함께 있던 동혁이도 자리를 뜨고도 한참을 더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눴으니까요. 눈치를 보아하니 창길, 영욱, 창수 형은 새벽까지 술 마실 기세였습니다. 나는 희한하게 점점 술이 깨서 머리만 무거운 상태가 되어 있었지요. 그래서 일행에게 말하지 않고 카카오택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먼저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후배들은 그러는 게 어디 있느냐며, 날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저는 이미 온라인 결제(택시비만 2만3천 원)가 끝난 상태이기도 하고, 술이 당기지도 않아, 미안하다고 말하고 먼저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깐 졸았던 것도 같습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단호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당장은 아쉬워도 이튿날 잠 깨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거든요. 아무튼 우리 동네 술집들도 모두 손님들로 북적였습니다. 가을은 술 권하는 계절인가 봐요. 집에 들어와 세수하고 양치하고 가방 속에 있던 떡을 냉장고에 넣은 후 커피 한잔하며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참 바빴던 하루였지요. 몸은 노곤한데 머리만큼은 빗물처럼 투명해진 느낌입니다. 집에 돌아오니 행복하군요. 이제 자야겠어요. 당신도 잘 자요.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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