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한글날 (10-9-日, 종일 비) 본문

종일 비 내렸다. 올 가을은 비가 잦다. 늘 일요일의 루틴대로 몇 편의 영화를 보았고, 청소를 했으며,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H에게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바쁘지 않았다면 H쪽에서 먼저 문자나 전화를 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매주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할 만큼 할 일이 쌓였다는 푸념을 며칠 전에 들었다. 인천문화재단을 비롯해 지자체에 소속된 출연기관들은 해마다 연말이면 1년간 진행한 사업에 관해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그게 직원들은 물론 부서장들에게는 무척 큰 스트레스를 준다. 지금부터 서류를 준비해야만 12월 평가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H는 일을 힘들어하기보다는 즐기는 스타일이라서 업무로 인한 하중은 크지 않을 테지만, 노력하지 않거나 게으른 직원과는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평가를 앞둔 시점에서) 그로 인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명민한 친구니까 잘 알아서 하겠지만.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담백한 문장 속에 담긴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가족사를 읽으며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었다. 남한 사회에서는 형극의 삶이었을 게 분명한 빨치산 가족의 삶을 다루면서도 그녀는 과잉된 감정을 드러내거나 신산한 세월을 윤색하지 않는다. 얼마나 긴 세월을 통과해야만 극단적인 슬픔조차 이리도 담백하게 서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일까. 작가는 담담하게 자신의 가족사를 써내려가고 있지만, 읽는 나로서는 오히려 그 담담한 태도와 담백한 문체가 더 큰 애잔함으로 다가왔다. 실패한 사회주의자가 살아낸 짧지 않은 삶을 추체험하면서 문득 내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나에게도 혁명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 어설프지만 빛나던 시절이 돌아보면 나의 화양연화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당시에는 모든 꿈들이 가능태로서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정지아 작가는 한국문단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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