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심호흡 크게 하고 온전히 10월 속으로 (10-4-火, 맑음) 본문

일상

심호흡 크게 하고 온전히 10월 속으로 (10-4-火, 맑음)

달빛사랑 2022. 10. 4. 02:13

 

어젯밤 늦게 아래층에서 물이 샌다며 아주머니가 올라왔다. 누수는 무척 심란한 일이다. 세 개의 방마다 돌아가며 바닥을 살피고 보일러실 물공급 파이프도 모두 살펴봤지만, 우리집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전문가가 와서 살펴볼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수도밸브를 잠가야 해서 밤새 화장실도 못 가고 음식도 못 만들어 먹었다. 아침에도 수돗물이 안 나와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했다. 원래 아침에는 늘 헬스클럽에서 샤워와 면도를 하는 게 일상이라서 씻지 못하고 출근할까 걱정하진 않았다. 집에 왔을 때, 아주머니로부터 아침에 잠깐 수도밸브를 열어줄 테니 물을 받아 놓으라는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정수기에서 식수부터 받아놓고, 화장실과 주방에도 하루 사용하기에 충분한 양의 물을 받아 놓은 후, 1층으로 내려가 아주머니에게 현관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부디 내가 퇴근했을 때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며 출근했다.

 

옛날 아파트 살 때, 아랫층에서 물이 샌다고 항의하는 바람에 (유독 소음에 민감해 서로 불편한 얼굴로 대화를 나눈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 봐야 일 년에 서너 번 어버이날이나 명절 때 어린 조카들이 놀러 와 뛰어다닌 것이 다지만, 아무튼)  비싼 돈 들여 전문가에게 누수 검사를 학고 목욕탕 욕조까지 뜯어보기도 했다. 결국 8층인 우리집에서 물이 샌 게 아니라 9층에서 샌 물이 배수관을 타고 7층까지 내려갔던 것인데, 정작 그것을 발견한 것은 엄청난 장비를 가지고 와 검사를 했던 누수 전문가가 아니라 나였다. 목욕탕 천정을 살펴보다가 흥건하게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관리실에 연락해 확인을 부탁했고, 플래시로 여기저기 비춰보던 직원들은 결국 누수의 원인을 찾아냈던 것이다. 누명(?)은 벗었지만, 그래서 7층 깡마른 아주머니는 기가 팍 죽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무척 미안해했지만, 25만 원이나 주고 부른 전문가는 왜 그것을 밝혀내지 못하고, 돈만 받아 간 것인지 짜증이 밀려왔다. 목욕탕 욕조를 시공했던 분은 그분 나름대로 무척 조바심을 내며 욕조를 철거했다 다시 설치했는데, 그분의 노고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이처럼 누수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곤했던 경험이 있어서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물이 샌다는 말을 들으면 덜컥 겁부터 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연 이틀에 걸쳐 쏟아진 폭우로 빗물이 건물의 외벽을 타고 흐르다 갈라진 틈이나 에어컨 동선을 밖으로 빼기 위해 천공한 부분으로 흘러든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아무쪼록 원인이 명쾌하게 밝혀졌으면 좋겠다. 돈 들어가는 건 다음 문제다. 원인을 찾지 못할 때가 훨씬 곤혹스럽다.


사흘간의 연휴를 끝내고 출근한 탓에 많은 일이 밀려 있었지만, 피곤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옥상에서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 청명해 마음마저 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시작한 10월이라서 제대로 10월과 인사조차 나누질 못했었는데, 이제 축제도 끝나고 뜻밖의 폭우도 다녀간 뒤라서 다소 여유가 생겼다. 하여 이제야 비로소 10월과 마주하며 눈인사를 보낸다. 긁지 않은 복권 같은 10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심호흡 크게 하고 온전히 10월의 품속에 친구처럼 안기리. 지금껏 아무것도 변한 건 없으니 앞으로도 새삼 가슴 시리게 할 일이 또 뭐가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으로 10월 앞에 선다. 안갯속을 걷게 된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만 있다면 두려울 건 없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