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 (8-24-水, 흐렸다 갬) 본문
아침 출근부터 선택 장애 발현!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다. 날씨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켜보니 점심 때쯤 소나기가 내릴 수도 있다는 예보. 이때부터 장애는 본격적으로 작동했다. ‘당장은 비가 안 오는데, 그래도 우산을 챙겨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집에 들어가 우산을 가지고 나왔다. 하지만 이내 ‘12시면 사무실에 있을 거고, 퇴근할 때는 비 소식이 없잖아.’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다시 들어가 우산을 두고 나왔다. 길 가면서도 ‘아니야, 예보가 항상 맞는 건 아니잖아. 지금이라도 되돌아가 우산을 가져올까.’ 고민했다. 전철역에 다 와서야 비로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빗방울이라도 한 방울 떨어졌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흐리기만 하고 비는 안 오니 고민할 수밖에……. 오래전 누군가에게 들은 말인데, 할까 말까 고민되는 건 안 하는 게 최선이고, 갈까 말까 고민되는 곳에는 안 가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정말 반드시 해야 할 일이거나 꼭 가야만 하는 곳이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곰곰이 생각하니 일리가 있다. 결국 확신하지 못하는 일은 가능한 한 하지 말라는 말 아닌가. 심지어 확신이 있어 벌인 일도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 의심하며 일을 벌이면 그 일이 오죽하겠느냐는 말, 경청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점심은 청사를 나가지 않고, 교육감실에서 교육감, 비서실장, 나 셋이서 초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 그런지 맛있었다. 하긴 초밥이 맛없던 적이 있긴 했던가. 없어 못 먹었을 뿐이지. 교육감은 오늘, 9월 1일 자로 새롭게 발령받은 교장, 교감 등 모든 임직원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그 인원이 수백 명이니 목도 아프고 손목도 아팠을 것이다. 교육감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고개와 어깨를 주무르며 목을 전후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 ‘저리 힘든 일을 뭣 때문에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일정은 빡빡하지, 체력을 달리지, 민원은 사방에서 밀려오지, 언론은 흠결만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지, 새파랗게 어린 시의원 놈들은 교육의 교자도 모르면서 소리부터 질러대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투성이인데, 왜 저리 힘들고 마음고생 많은 일을 사서 하는 걸까 의심이 든다는 말이다. 과연 교육의 수장으로서의 사명감과 보람이 그 모든 고된 과정을 상쇄해 줄 수 있는 걸까. 나는 모르겠다. 시켜줘도 안 할 것 같다. 나는 그저 글 쓰는 일이 제일 좋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다른 문제이고, 그 누구의 간섭없이 쓰고 싶은 글을 원 없이 쓰는 일, 이것처럼 행복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시는 예술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이 일을 하며 밥 먹고 살 수 있다면 세상에서 이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는가.
오늘은 추석을 맞아 인천시민들에게 드리는 명절 메시지를 작성해 비서실로 보냈다. 추석 전후 영상으로 만들어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게재할 예정이다. 소통협력실 대변인이 비서실 김 주무관을 통해 나에게 전한 말은 “보좌관님, 말랑말랑하게 써주세요”였다. 그 말을 전하며 비서실 김 주무관은 웃었지만, 나는 ‘말랑말랑하게? 그동안 내 글이 딱딱했나?’ 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관공서의 글은 멋지게 쓰기보다 쉽게 써야 하는데, 그동안 나는 지나치게, 그야말로 문학적인 표현을 많이 쓰긴 했다. 표현 자체가 갖는 의미성과는 무관하게 듣는 이 입장에서는 낯선 단어들, 이를테면 ‘몽니, 자연의 시계, 바람의 속삭임, 구축(驅逐), 계절의 약속’ 등의 표현은 내 멋에 취한 단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쉽고 무난한 표현을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글이란 TPO, 다시 말해 때와 장소,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 대상이 시민인지 직원인지 또는 학부모인지 학생인지도 변별해야만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늘 고민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글 쓰는 일이지만, 문학적인 글보다는 실용적인 글을 자주 써야 하므로 단어 선택이나 감정이입의 수위를 항상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후배 상훈이가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예상대로 자신의 단골집인 인천집에서 7시에 보자고 하는데, 그럼 나는 오늘도 불편하게 술을 마셔야 하는 건가. 갈매기 사장님 눈치 보게 생겼군. 늘 내가 술값을 내는 게 고마웠던지(지난달 인천집에서만 12만 원 계산했다. 그리고 2차로 간 LP 바 비틀즈에서의 술값 5만 원도 계산, 과용하긴 했다) 오늘은 상훈이가 계산하려는 모양이니 갈매기 종우 형이 신경 쓰여도 인천집에서 만날 수밖에……. 그 아이는 항상 인천집에서만 술을 마신다. 바로 앞집인 갈매기 안주에 대해서는 워낙 부정적이니 어쩌겠는가. 오늘은 그래도 새로운 안주를 먹어 보긴 하겠군. 갈매기의 안주는 모두 먹어봤으니, 새로운 안주를 먹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 아무튼 모두가 만족하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그나저나 내일 저녁에도 교육감과 비서실 직원들이 함께 저녁 먹기로 했는데...... 가능한 한 적게 마시고 많은 말을 들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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