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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아버지 기일ㅣWho will stop this rain? (8-08-Mon, 폭우) 본문

일상

아버지 기일ㅣWho will stop this rain? (8-08-Mon, 폭우)

달빛사랑 2022. 8. 8. 00:31

 

아버지 23주기 기일을 맞아 동생 내외, 누나들과 함께 가족묘역을 찾았다. 요 며칠 내린 비로 무덤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올라와 있었다. 명절이 다음 달 초라서 조만간 공원 측에서 일괄적으로 벌초를 할 것이다. 동생이 준비한 깨끗한 조화를 화병에 꽂고, 간단하게 예배를 드렸다. 묘역을 찾을 때면 늘 아버지보다 엄마를 더 애틋하게 그리워 한 게 미안해서 오늘은 오래도록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했다. 생각해 보면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정말 훌륭한 분들이었다. 두 분과 같은 부모를 만난 건 자식인 우리에겐 행운이었다. 두 분 모두 집에서 주무시듯 하늘에 드셨고, 평생 자식들이 하는 일을 믿어주셨다. 물론 하던 사업이 망한 후 아버지는 교회일과 성경 탐독에만 몰두하셔서 생활의 궁핍은 필연적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를 대학까지 보냈다. 이후 궁핍의 긴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어머니의 생활력이었다. 식당일을 하시며 작은 누나와 나를 결혼시켰고, 동생의 대학 4년을 책임지셨다. 그건 상상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초인 같은 생활력이었다. 도대체 그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와 같은 힘과 의지가 분출될 수 있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말년에 나와 함께 지내면서 보여준 깔끔하고 정갈한 삶의 모습은 존경심을 불러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방 청소를 끝내고, 화장대 앞에서 곱게 단장한 후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11시면 어김없이 기도로서 하루를 마감하는, 그야말로 빈틈 없는 삶이었다. 어머니의 기도는 꼬박 한 시간 동안 계속됐다. 자식을 위해서, 특히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임종을 위해서 기도하고, 부탁받은 지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성년처럼 고귀해 보였다. 그런 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내가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사업이 망해 무능력한 가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철없던 나와 자주 부딪쳤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곧바로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얼마나 많은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가셨을까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등줄기에서 땀이 날 정도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특히 내가 힘들었던 시절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더욱 사무치게 그립고 한 없이 미안하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아실 거라 믿는다. 미안해 하는 내 마음과 가눌 수 없는 나의 그리움을.....

묘역에서 예배드릴 때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는데, 막 공원을 빠져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모든 것에 의미 부여하기 좋아하는 큰누나가 "야,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우리들 비 맞지 말라고 배려해주셨네" 하고 신기한 듯 말했다. 옆에 있던 작은누나가 웃으며 거들었다. "그러게 말이야.:" 사실은 나도 그 절묘한 타이밍이 신기하긴 했다. 우리는 점심 식사를 위해 도림동 곤드레나물밥집으로 이동했다. 밥값은 비싼데도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식당에 들어가 좌석에 앉으니 양동이로 불을 들이붓듯 비가 쏟아졌다. 누나들은 이번에도 "조금만 늦게 도착했으면 저 비를 다 맞았을 거 아니야. 부모님이 우리를 도와주는 게 확실해"라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맹렬하게 내리는 비를 경외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설 때도 폭우는 그치지 않았다. 비의 형세가 어찌나 그악스러웠던지 문득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빗길 운전이 걱정된 큰누나는 "빗줄기가 조금 약해질 때까지 우리집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쉬다 가라"라고 제안했고, 우리 모두는 동의했다. 큰누나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쯤 쉬다 보니 빗줄기가 조금 약해졌다. 그 사이를 틈타 얼른 돌아왔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믿지만) 오늘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신 게 틀림없다. 부모의 자식 걱정은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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