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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분주했던 하루, 맑음 본문

일상

분주했던 하루, 맑음

달빛사랑 2022. 4. 20. 00:00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재단 심의는 꼬박 3시간 동안 이어졌다. 다행히 지원 단체를 선정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위원장으로 호선되어 심의를 진행했는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각 위원이 검토해 온 결과를 토대로 각자 20팀씩 돌아가면서 발표한 후, 심의위원 5명 모두에게 높은 점수를 받은 단체를 우선 추렸다. 그 결과 예산 범위 내에서 (재단에서 애초 생각했던) 지원 가능한 단체 숫자가 얼추 가려졌다. (재단에서는 최소 13개, 최대 15개의 단체를 지원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4표 이상 받은 단체를 다시 추린 후, 심의위원들이 의견을 교환해 3개의 단체를 추가했다. 이렇게 추려진 16개 단체를 대상으로 심의위원들은 다음 주 화요일 면접을 진행해 최종적으로 지원받을 단체를 선발하게 될 것이다. 예산 액수를 조정해서라도 16팀 모두 지원했으면 좋겠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지원했겠는가.

 

심의를 마치고 후배 K가 구월동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입도 깔깔하고 머리도 아파서 막걸리나 한잔하려고 갈매기에 들렀다. 수요일이라서 혹시 조구 형이 계실까 내심 기대했지만, 뵙지는 못했다. 혁재도 오늘은 구월동에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리두기가 풀린 후 손님이 현저하게 많아진 갈매기에는 한동안 안 보이던 딸과 어머니까지 나와서 주방일을 거들고 있었다. 사장인 종우 형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좋은 일이다. 막걸리 한 병 반쯤 마시고 일어서려 할 때 후배 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배 시인 손과 더불어 동인천에 있는 사진작가 임 모의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으니 오라는 것이었다. ‘팔자 좋은 놈들 같으니라고.’ 하긴 편의점에 붙잡혀 있는 임 모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술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인사가 저녁 6시까지는 영락없이 가게에 붙박여 있어야 하니 오죽 답답했겠는가. 그런데 웬일로 술집이 아니라 집에서들 마시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릴 적 동네 후배인 임의 아내 심 모가 “오빠, 빨랑 와서 저 인간들 좀 데려가요.”라고 진심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오라고 재촉해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동인천으로 향했다. 오늘은 정말 지그재그 행보였다.

 

동네 오빠가 왔다고 임의 아내인 후배 심은 소라와 조개탕 등 안주를 이것저것 만들어 내왔다. 그 자리에 있던 천덕꾸러기들(심의 표현에 의하면)은 “이건 형 아니었으면 기대도 할 수 없는 안주예요. 형이 오기 전에는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와주셔서 고마워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긴 저녁 시간에 우르르 몰려가 술상을 봐달라고 떼를 썼을 텐데, 아무리 아는 사이라도 얼마나 민폐였을 것인가. 그들을 바라보던 심의 표정은 안 봐도 뻔하다.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후배들을 데리고 임의 집을 나왔다. ‘술꾼들’은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하자는 눈치였으나 나는 재빨리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전철역으로 걸어 내려왔다. 많이 마시기도 했고, 솔직히 좀 피곤했다. 그래도 몇 해 전 위암을 앓던 심이 건강을 되찾은 모습을 보여주어 반가웠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었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이런 게 또 사는 잔재미를 주기도 한다. 집에 도착하니 누나가 갓김치, 총각김치, 파김치를 잔뜩 가져다 놨다. 본인이 담은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서 났을까. 아무튼 고마운 일이지. 내가 주문한 김치도 내일이나 모래쯤 도착할 것이다. 한동안 김치 걱정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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