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제물포에서 후배를 만나다 본문

일상

제물포에서 후배를 만나다

달빛사랑 2022. 3. 18. 00:05

 

결국 후배 장(張)의 부름에 응했다. 보름을 넘긴 금주가 오늘로써 끝난 셈이다. 딱히 음주 욕망은 없었다. 다만 오전에 이미 다음 주 목요일이 마감인 칼럼(기호일보 금요논단)을 완성했기 때문에 마음이 다소 개운한 상태이긴 했다. 항상 청탁 원고를 마감 전에 송고하고 나면 숙제 하나를 완성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갈매기에 들르곤 했는데, 요즘에는 코로나가 극성이기도 하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 2주 가까이 술과 외출을 자제해 왔다. 한편 장은 오래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전화해서 안부를 묻곤 했는데, 안부 끝에는 항상 “형, 시간 되시면 제물포로 나오세요. 제가 정말 맛있는 닭갈비를 사드릴게요.”라며 은근히 술 한 잔하자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동안 서너 차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완곡하게 사양해 왔는데 (사실 핑계라기보다는 연락받을 때마다 다른 일이 있어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거나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여의치 않았다) 오늘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미안한 마음이 컸다. 배도 고팠다. 후배가 그토록 칭찬하는 닭갈비도 먹어 보고 싶었다. 더 오래 금주해 보고 싶은 묘한 욕망이 있었으나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뭔가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길 때 ‘그래, 어디까지 가나 기록 한 번 세워볼까’ 하는 마음) 완전히 술을 끓었던 게 아니므로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끊고 정확하게 1시간 후 제물포로 향했다.

목적지는 제물포역 앞 ‘용구네 닭갈비’. 장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2층 창가에 앉았는데,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도시의 밤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갈비는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두 종류가 있었다. 솔직히 닭갈비는 '춘천닭갈비'만 먹어봤을 뿐 이렇듯 닭고기를 삼겹살처럼 소금구이로 먹어본 건 처음이다. 별미였다. 후배가 자랑할 만했다. 3인분을 시키면 1인분을 더 주는 ‘3+1’ 안주를 주문했는데,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둘이 소주 4병을 마셨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마셨다. 닭갈비집을 나와서는 근처 장의 집으로 갔다. 장은 낮에 장 봐 온 멍게를 손질해서 내놓았다. 멍게의 상큼한 맛이 입맛을 돌게 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셨는데도 도무지 취하질 않았는데, 상큼한 멍게 안주에 소주 1병씩을 더 마시자 기분 좋은 취기가 찾아왔다. 나는 술자리를 끝내야 할 때의 몸의 상태와 그 느낌을 정확히 안다. 더 마시면 기분 좋았던 취기가 이내 불편한 취기로 바뀌는 바로 그 느낌.... 그런 느낌이 들 때면 나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지인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내가 일어서면 붙잡지 않는다. 내가 마지막 잔을 비우고 “이제 갈게”하고 일어서자, 장은 나보다 훨씬 술이 강해 아쉬웠겠지만(아마 두어 병은 더 마시고 싶었을 것이다), 순순히 정거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택시를 탈까 하는데 마침 15번 버스가 정거장으로 들어왔다. 얼른 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창밖에서 손을 흔드는 장에게 나 역시 손을 흔들어주었다. 돌아와 “잘 도착했어. 오늘 너무 즐거웠어. 불러줘서 고마워.”라고 문자를 보내자 “예, 저도 즐거웠어요. 쉬세요. 형”하고 답장이 왔다. 방 안의 사물들도 “잘 다녀왔어?” 하며 안부를 물어왔다. “그래, 좋았어”라고 대답해 주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비가 오려나 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하영의 노래를 듣다ㅣ스피커 구매  (0) 2022.03.20
3월 19일 토요일, 종일 비 내리다  (0) 2022.03.19
3월 17일 목요일, 맑음  (0) 2022.03.17
전쟁 중인 봄날, 맑음  (0) 2022.03.16
3월 15일 화요일, 맑음  (0) 2022.03.1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