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그해 우리는 무얼 했을까 본문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을 보았다. 달달한 청춘 드라마의 공식을 시종일관 지켜나간 '뻔한' 드라마였지만, 촌스럽지는 않았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볼 때마다 매번 ‘아,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사실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이 열려 있던 시절이었을 뿐이지 드라마에서처럼 나의 사랑이 늘 행복한 결말이었던 건 아니다. 물론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극적이고 애틋한 순간은 나에게도 많았다. 이별을 슬퍼하며 눈물 짓기도 했고, 몇 날 며칠 술에 절어 명정(酩酊) 상태로 지낸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럴 때마다 세상에서 나의 사랑이 가장 절실하고 아름답고 가슴 아픈 사랑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드라마로 치자면 나는 비련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늘 비련의 주인공이었던 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1년 이상 사귀어봤던 이성은 여덟 명 정도다. 스쳐 지나가듯 만났던 사람이나 (내 쪽에서든 상대 쪽에서든) 한쪽에서만 좋아했던 사람까지 치자면 10명이 훌쩍 넘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사귀었던 8명 중 2명은 나를 버렸고, 3명은 내가 상처를 주었으며, 또 다른 두 명과는 자연스럽게 헤어졌고(이 두 사람은 이혼 후에 만났다), 나머지 한 명과는 결혼까지 했다. 한 번 만나면 길게 만나는 편이라서 사귄 사람은 많지 않지만(많은 건가?) 8명을 1년씩만 사귀었어도 8년이니, 통산 연애 기간은 꽤 긴 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름 연애를 많이 했군) 다만 지금 생각해도 창피하고 오글거려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도 있다. 나 또한 실연의 아픔을 겪어봤으면서 상대와 헤어질 때 한 번은 무척 치졸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별의 가장 나쁜 방식인 ‘잠수타기’를 시전했던 것이다. 집 전화 이외에는 특별한 연락 수단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현재는 특별히 만나는 사람이 없다. 오랜 시간 혼자 생활해 오다 보니 내 삶의 영역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이 낯설다. 연애가 아니더라도 홀로 집중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고, 무엇보다 홀아비 시인에게 누가 관심을 두겠는가. 유치한 호승심에 가끔 지인들 앞에서 “내 인생의 모토는 사랑이야.”라고 호기 있게 말하지만, 그건 그저 바람(願)일 뿐이고 누군가와의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막연하지만 사랑에 관한 로망을 지니고 사는 삶은 나쁘지 않다. 가끔 그러한 로망이 일상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긁지 않은 복권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사람처럼 드라마 속 사랑이나 남의 연애 이야기에 괜스레 가슴이 뛴다. 어쩌면 장년의 사랑이란 여우가 바라보는 신 포도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김다미와 최우식, 그리고 엔제이 역할을 맡은 신예 노정의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연애 세포 재생을 위해서라도 가끔 넷플릭스에 들러 이 드라마를 돌려보곤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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