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6월 20일 일요일 본문
새로 산 핸드폰은 오래된 유심칩을 거부했다. 지금까지 내 정보를 품고 있던 유심칩은 나이가 지긋한 칩이다. 초창기 모델부터 최근까지 핸드폰은 바뀌어도 유심칩은 바꾸지 않고(바꿀 필요가 없어서) 새 기기에 옮겨 끼우기만 했기 때문에 이 유심칩을 거쳐 간 핸드폰은 상당히 많다. 생각나는 것만도 서너 대는 족히 된다. 최근까지 사용하던 5년 된 노트5 모델을 제외하고는 핸드폰 교체 주기가 대략 2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니 이 유심칩의 나이는 어림잡아도 10살은 넘는 거다. 요즘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시대에 10년을 살았으면 장수한 셈이다. 사실 이 유심칩이 고장 나서 새로운 핸드폰이 거부한 것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새로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통신회사와 핸드폰 제조 회사의 상술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일부러 낡은 유심으로는 새로 개발된 핵심 기술(서비스)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막아놓음으로써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신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막아놓은 새로운 기술 대부분은 소비자들의 이용 빈도가 높은 서비스 기술이다. 예를 들어 티머니라든가 삼성 페이 등등은 오래된 유심칩에서는 작동되지 않거나 제품 간의 호환이 불안정하다. 그러니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7천700원짜리 유심칩을 새로 구매하거나 최신 칩이 탑재된 새로운 폰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유심칩을 사기 위해 오전부터 동네 통신사 대리점을 찾아다녔는데, 일요일에는 통신사 온라인이 막혀 있어서 유심칩을 구매해도 개통이 안 된다고 했다. 허무했지만, 운동한 셈 쳤다. 새로운 물건이 오면 항상 그것과 친숙해지기 위해, 아니 이전 휴대폰의 루틴을 완전히 새것에 옮겨 놓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게 과도해서 가끔은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한다. 사실 이러한 습성은 꼭 새 물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세금이든 청소든 관공서 서류든 해결해야 하는 일이면 넉넉한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해결해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앞에 놓고는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강박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약속 시간을 어기거나 세금을 연체하거나 제출해야 할 서류를 깜빡 잊는 일은 절대 없어서 꼼꼼하고 계획성 있는 사람으로 타인에게 비친다. 이런 습성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좋은 점은 어차피 할 일을 말끔하게 해놨으니 그것을 제때에 하지 못해 발생하는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나쁜점은 느긋할 틈이 없이 일에 몰두하니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고쳐보려고 무진 애를 써 봤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일부러 노력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또한 나의 고착된 일처리 방식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앞으로도 나는 사서 고생할 것이고 내일 해도 될 일을 오늘 하면서 땀을 흘리게 되겠지만, 어쩌겠는가. 새로운 루틴으로 자리잡은 것을......
내일은 인천일보에서 기획하고 있는 자사 발행 콘텐츠 및 저서 재발간 사업 준비 모임차 신포동에 가야 한다. 당분간 할 일이 많아질 듯하다. 바빠야 잡생각이 없어진다. 더운 여름을 바쁘게 통과하다 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겠지.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끔 우연의 옷을 입은 운명 같은 (0) | 2021.06.22 |
---|---|
다인아트, 편집회의 (0) | 2021.06.21 |
새 휴대폰을 구매하다 (0) | 2021.06.19 |
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0) | 2021.06.18 |
놀랍고 반갑고 안타깝고 (0) | 2021.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