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대한 지나고 겨울비가 봄비처럼 내리네 본문
어제가 대한(大寒)이었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소한 추위는 사납고 대한 추위는 순하다는 말일 텐데, 속담 그대로 대한인 어제는 정말 포근했다. 오늘도 포근한 가운데 종일 비가 오니 흡사 봄비 같았다. 오전부터 내린 비는 지금까지도 내리고 있다. 날이 추웠다면 대설(大雪)이 되었을 것이다.
새벽에 엄마 꿈을 꾸었다. 뭔가 난감한 일을 저지르고 방안을 어지럽힌 채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그때 스스로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꿈속에서였지만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웠는지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엄마 앞에서 막 울었다. 꿈속에 나타난 엄마는 젊은 시절의 엄마였다. 생전에도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지 못한 주제에 꿈속에서조차 엄마에게 민폐를 주다니 안심하면서도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간단한 장을 봤다. 통 입맛이 없어서 라면만 먹다 보니 속을 버릴 것 같아서 귀찮았지만, 옷 차려입고 주공아파트 드림마트까지 가서 깻잎장아찌, 오이무침, 파래무침, 양배추, 두부, 생선, 찌개용 돼지고기 등을 구매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약국에 들러 용각산도 한 통 샀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자꾸만 엄마가 앉아 식사하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떠난 후 식사를 변변찮게 해결하면 하늘에서도 속상해하실 거 같아서 의식적으로 맛있게 먹었다. 열흘 만에 입맛이 돌아온 것 같았다. 이제 거리두기 단계가 하향되면 운동도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저녁을 먹고 치우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없는 집에서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냐며 안부를 물었다. 아들에게도 할머니와의 이별은 무척 큰 상처였을 것이다. 평소에도 나에게 할머니와 언젠가 이별할 생각을 하면 미리부터 가슴이 미어져 온다는 말을 자주 했던 아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애틋했다. “아빠에게도 자주 연락할게.”라고 말을 해올 때는 가슴이 찡했다. 할머니와의 영별을 계기로 아이도 정신적으로 부쩍 성장한 느낌이다. “우리 가족이 화목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할머니의 뜻을 잇는 길이고 하늘에서도 할머니가 기뻐하실 일이다. 알았지?” 하고 물으니, “응, 나도 노력할게.”라고 대답해주었다. 아들과의 관계가 가까워진 것도 엄마가 가시면서 준 선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너무도 자애로웠고 너무도 깔끔하셨으며 남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셨던 분, 뭔가 결심을 하면 반드시 그것을 이뤄내셨고,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으실 때 빼놓고는 의료용 기저귀조차 거절하시며 기어서라도 화장실에 가셔서 볼일을 보실 정도로 의지가 강하셨던 분, 신앙이 깊어 신의 은총을 의심하지 않았고 늘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를 빼놓지 않으셨던 분, 그런 분이 바로 울 엄마다. 나는 그분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얻고 배웠다. 여리고 눈물 많은 성정은 물론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를 배웠으며 남을 돕는 일은 돕는 자신도 기쁘지만, 그 덕이 자식에게까지 반드시 이어질 것이라며 늘 타인의 어려움을 헤아렸던 분, 울 엄마. 그런 엄마의 자식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향기를 머금은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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