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예술가의 근성ㅣ 연극 <삼거리 골목식당>을 보다 본문

일상

예술가의 근성ㅣ 연극 <삼거리 골목식당>을 보다

달빛사랑 2020. 9. 13. 12:27

 

코로나로 인해 현재 공연예술계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에 빠져 있다. 예정된 공연들이 모두 취소되거나 기약 없는 후일(後日)로 연기되었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이러한 미증유의 상황이 도대체 언제 끝날지 타산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바이러스 감염자 폭증으로 인해 더욱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공공이 관리하는 극장은 대관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공연이 줄어 소극장은 소극장대로 운영난에 시달리고 극단은 극단대로 공간이 없어 공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한편에서는 이렇듯 공연계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을 냉소하며, “헝그리정신이 사라져서 그런 거야”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이전에는 배곯아가면서 예술을 했는데, 요즘은 지나치게 공공지원에 기대서 예술을 하다 보니 자생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없진 않으나 이러한 논리는 변화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단견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예술가들이 공공지원금을 확보하게 된 것은 그들이 관에 지원금을 ‘구걸’했기 때문이 아니라 악조건 속에서 전개한 치열한 예술 활동의 이력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다는 것을 공공 쪽에서 오히려 인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이 공공지원을 받아 예술 창작을 펼치는 것을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일부 예술가들이 자생력을 잃고 오로지 공공지원에 의존하는 활동만 하고 있다면 그건 지원 제도가 잘못된 게 아니라 해당 예술가와 단체가 매너리즘에 빠졌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지원은 지원일 뿐 창작의 주체는 예술가들이다. 예술가들이 창작의 ‘행복한 고통’을 망각하고 오로지 관의 지원에만 기대 예술을 하려 한다면 그들은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허울을 쓴 사업가들일 뿐이다.


이처럼 어려울 때 후배 연극 연출가 이재상의 뚝심이 공연 하나를 선보였다. <삼거리 골목 식당>. 한 해의 마지막 날,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품고 있는 손님들이 삼거리 식당에 모여든다. 식당 근처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두 명, 3년 전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마음이 통해 연인이 되었고 마침내 결혼을 앞두고 다시 삼거리 식당을 찾은 젊은 연인들, 20여 년 전, 술집 하는 엄마가 창피해 가출했다고 다시 고향을 찾은 젊은이, 30년 전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채 돈을 벌러 외국에 나갔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고향을 찾은 나이든 사내, 역시 30여 년 전 집을 나간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는 식당 주인 등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은 하나 같이 쓸쓸하다. 이들은 허름한 삼거리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들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의 연원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 닮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서로를 보듬어 준다. 삼거리 식당이 이들에게 위로의 공간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공통의 감정이 이끈 필연적 만남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서로의 사연에 공감하며 위로를 나누는 동안 묵은해가 지나고 새해가 시작된다. 그리고 창밖에는 소담하게 함박눈이 내린다. 모두가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고즈넉이 생각에 잠긴다.

 

세밑에 우연히 특정한 공간에 함께 있게 된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아픔을 위로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어디선가 본듯하다. 하지만 배우들의 정확한 딕션(diction), 찰진 대사(감독 겸 작가인 이재상은 정말 달변가이자 다변가인데, 대사에 그의 그러한 특성이 잘 녹아 있어서 마치 그와 술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효율적인 무대 구성, 극 중에 노래를 넣어 관객들의 호응을 배가시킨 전개, 군더더기 없어 깔끔한 느낌을 받는 러닝타임(70분) 등이 그 진부함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어려운 시기, 민폐가 될 수 있는 공연을 강행한 이재상의 뚝심에 경의를 표한다. 그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부디 “예술은 길고, 전염병은 한순간이다.”를 확인하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때는 그랬지  (0) 2020.09.15
교육청 일기 : 삼계탕을 먹다  (0) 2020.09.14
불면으로 시작한 금요일(9.11)  (0) 2020.09.13
[목요일]청탁을 받다  (0) 2020.09.11
관료사회(구성원)의 명암  (0) 2020.09.0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