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영화를 보다] 청설(聽說, Hear me) *스포 만땅! 본문
청설(聽說, Hear me), 2010년에 처음 개봉했고 2018년에 재개봉한 대만영화다. 식당에서 부모를 도와 배달 일을 하는 티엔커는 어느 날, 농아수영단의 수영 연습장으로 배달을 갔다가 언니가 연습하는 것을 응원하러 온 갈래 머리 양양을 보고 한 눈에 반한다. 이후 양양에 대한 사랑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키워나가는 티엔커. 언니처럼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양양과의 사랑은 티엔커에게 그야말로 좌충우돌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적당한 오글거림과 익숙한 클리셰를 동원해 밉지 않게 보여준다.
특히 엄마는 돌아가시고 선교사인 아빠는 먼 나라로 선교하러 나가있는 현실에서 언니의 뒷바라지를 도맡고 있는 소녀 가장 양양과 그런 동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언니 샤오펑이 침대에 누워 나누는 애틋한 대화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남녀 간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자매간의 갈등과 사랑에도 주목한 감독의 섬세한 배려가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물론 이밖에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은 무척 많다)
그리고 아들의 여자 친구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티엔커의 부모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한 장면처럼 스케치북에 글을 써서 자신들을 소개하고 양양에 대한 환영의 마음을 전하는 대목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자아내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드러나는 반전, (솔직히 뒷부분에 반전이 있다는 관람객들의 감상평을 읽고는 예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실 양양은 청각장애자가 아니었다는……. 그럼 왜 줄곧 자신에게 수화로 이야기를 했느냐는 티엔커의 질문에 양양은 “난 당신이 듣지 못하는 줄 알았어요.”라고 대답한다.
영화에는 핸드폰 메신저 대신, 상대가 로그인해야만 대화가 가능한 MSN 메신저 등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가득하다. 동시대에 연애를 경험했던 사오십 대 관객들에게 그것들은 추억을 소환하게 하는 강력한 기재들이자 공감의 매개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장애를 갖고 있는 애인과의 사랑을 지나치게 신파로 가져간다거나 판타지로 처리하지 않고, 개연성 있는 갈등들을 통해 풀어가고자 한 감독의 의도가 나는 좋았다. 물론 티엔커의 부모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양양의 장애를 적극 수용하는 장면은 지나친 ‘영화적 설정’ 혹은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사실주의 영화가 아니지 않은가. (일본판 청춘멜로였다면 분명 판타지가 난무했을 것이다.) 따라서 행복한 결말을 지향하는 대만 멜로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받아들이기가 그리 거북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이 영화를 감독한 청펀펀 감독은 “인간관계에서의 거리감과 따뜻함을 연구하기 위해 일상과 감정을 환상적인 스타일로 만드는 감독”이라는 평을 받아왔던 감독일 뿐만 아니라 대만에서 가장 시적인 여성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영화의 한 대목쯤에서 보이는 비현실적인 서정은 옥의 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워라. 나의 화양연화, 그때, 그곳, 그 사람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화로운 하루, 아이러니하지만..... (0) | 2020.02.09 |
---|---|
예향(藝鄕) 진도의 예인들에게 경의를.... (0) | 2020.02.08 |
겨울의 시간은 빈틈 없이 흐르고 (0) | 2020.02.06 |
훼절과 맹목의 미친 바람속에서 (0) | 2020.02.05 |
입춘을 맞아 나는 얼굴의 점을 빼고 (0) | 2020.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