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훼절과 맹목의 미친 바람속에서 본문
한 유명 시인이 SNS에 올린 글을 보면서 우울해졌다. 그는 한 때 순정한 시심으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시를 썼던 꽤 괜찮은 시인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정권찬양론자가 되어 그의 시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다. 심지어는 미국의 강권에 의한 해외파병 문제를 합리화하면서 “거기(호르무즈) 해안에 사는 물새도 발끝을 오므리고 낯선 군인들을 기다릴 것이다”라는, 미문으로 윤색된 단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아, 어쩌다 명민했던 한 시인은 이렇듯 어용의 비루한 길에 스스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일까. 아프다. 슬픈 계절이다. 세상 모든 것이 미쳐가고 있다. 훼절과 맹목의 뇌동(雷同)적 삶이 신념과 원칙으로 윤색된 채 횡행하는 이 미친바람의 질주 속에서 도대체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문득 오래 전 읽었던 또 다른 선배 시인의 준엄한 경계(警戒)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김광규, ‘묘비명’ 전문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를 보다] 청설(聽說, Hear me) *스포 만땅! (0) | 2020.02.07 |
---|---|
겨울의 시간은 빈틈 없이 흐르고 (0) | 2020.02.06 |
입춘을 맞아 나는 얼굴의 점을 빼고 (0) | 2020.02.04 |
문득 봄 여행을 꿈꾸다 (0) | 2020.02.03 |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0) | 2020.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