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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친구 결혼식날, 진눈깨비 내리고.... 본문

일상

친구 결혼식날, 진눈깨비 내리고....

달빛사랑 2019. 12. 21. 17:23

점심때는 친구의 결혼식, 오후에는 작가회의 행사, 바쁜 하루였다. 다행히 결혼식과 작가회의 행사는 시간대가 달라서 두 곳 모두 참석할 수 있었다. 송도 라마다 호텔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거장으로 내려올 때 쌀가루 같은 눈발이 날렸다. 싸락눈 내리는 날이면 언제나 기형도 선배의 시 진눈깨비가 생각난다.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서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갓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 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기형도, ‘진눈깨비전문

 

도대체 시적 화자의 (혹은 선배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많은 절망이 켜켜이 쌓여 있었기에 갑자기 만난 진눈깨비를 보며 자신은 불행하다고 말하며 눈물까지 흘렸던 걸까. 그 짧은 순간에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그 절절한 절망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 역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시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배는 정말로 세상을 등졌다. 마치 일생 몫을 다했으니 후회 없다는 듯이…… 하지만 그 죽음의 방식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한 동안 우리는 쉽게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작가회의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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