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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비내리는 날, 배다리에 들다(入) 본문

일상

비내리는 날, 배다리에 들다(入)

달빛사랑 2019. 6. 6. 22:30



일기예보는 의기양양 했다. 기다리던 비는 기특하게 내렸다. 비는 항상 거리에만 내리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도 내렸기 때문에 오후가 되면서 당연한 동요가 거세게 일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술 마시기로 결심한 나는 거센 동요에도 불구하고 책상 앞에 앉아 밀린 일거리를 추스르고 있었다. 의뭉스럽게, 마치 알면서 속아주는 투로 전화가 걸려왔다. 후배 시인 의 생일이었다. , 나는 어제 이미 한 주 분의 술을 다 마셔버렸는데……. 게다가 후배 진현이가 불면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오늘부터는 의식적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시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테라스로 나가 내리는 비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결국 외출을 결심했다. 시각장애를 가진 손의 외로움이 빗물처럼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오늘도 또하는 표정으로 신발을 고르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리 늦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현관을 나섰지만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개코에는 익숙한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목소리가 아주 크고 쉴 새 없이 말을 하던 누군가 때문에 다소 피곤했지만 그는 자기가 내뱉은 말 만큼 많은 술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용서하기로 했다. 그는 시인이며 모 문학단체 부회장이고, 규모 있는 화원(花園)의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일정한 술값을 지불하고 술자리의 독무대를 구매한 셈이다. 아무려면 어떠랴. 성향이 맞지 않았을 뿐 문학 특히 시에 대한 열정에 있어서는 나보다도 더욱 순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굳이 빗속을 거닐며 꽃을 구경한다거나 신파극의 변사 같은 말투로 즉석 시를 읊조리는 등의 오버액션이 다소 희극적으로 느껴졌지만 그 모든 것이 어쩌면 맑은 심성에서 비롯된 정제되지 않은 진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나는 그렇게 믿어주고 싶었다.

 

비는 밤이 되면서 점점 거세졌다.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빗물에 둥둥 떠내려갔다.

비는 확실히 낯선 사람, 낯선 사물조차

익숙하게 만들어 주는 말랑말랑한 힘이 있었다.

취하지는 않았으나 자꾸만 빗속으로

풀어져 퍼지려는 마음을 붙잡고 간신히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잠들지 않은 엄마가 나를 맞았다.

엄마의 얼굴은 환해졌고, 비는 여전히 거리 위로 하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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