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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엄마, 미안하고 고마워 본문

일상

엄마, 미안하고 고마워

달빛사랑 2019. 6. 7. 22:00

그 미안함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아니 조금은 알 것도 같지만, 아무튼 누나와 어머니는 늘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습니다. 정작 그분들의 눈치를 보거나 맏이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건 내 쪽인데…… 어쩌면 나는 연민을 미안함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장남이란 원래 그런 존재인 모양입니다. 작년 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시다 간신히 의식을 회복해 일반병실로 내려오셨을 때, 어머니는 동생 앞에선 자연스럽게 배변 패드를 바꿔달라고 부탁하거나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셨지만 나에게는 결코 단 한 번도 그런 부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와 함께 있을 때, 변의(便意)를 느끼시면 환자용 배변 패드를 착용하고 있으면서도 끝끝내 휠체어를 가져오라고 하신 후 기어이 화장실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셔서 볼일을 보셨습니다. 심지어 다 끝나면 부를 테니 문 앞에조차 서 있지 말라고 당부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살가운 동생이 편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장남에게만큼은 절대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워낙 깔끔하고 부지런하신 어머니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시면 샤워를 하고 화장을 마치신 후에야 비로소 식사를 하십니다. 어머니께서는 나와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추레한 모습을 용납하신 적이 없습니다. 타고난 성정도 그렇거니와 지금 현재의 삶은 비록 녹록하지 않지만 자신의 뿌리인 여산 송씨 가문의 딸로서의 자부와 문 씨 가문 맏며느리로서의 책임감이 그런 성정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그러한 자부 및 책임과 연동하여 맏아들인 나에 대한 당신 세대 특유의 예우와 배려가 자연스럽게 표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소소한 부탁들은 동생에게만 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걱정과 배려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끔 서운해질 때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를 전적으로 이해합니다. 눈치 보지 마시고 필요한 것, 요구할 것이 있으면 당당하게 나에게 말씀하시라고 드리는 당부가 실은 얼마나 부질없으며 또한 얼마나 당신께는 어려운 일인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송구하면서도 가슴 시리게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어머니의 아흔 번째 생신을 생각하노라니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는군요. 이 막심하고 처연한 태생적인 불효를 어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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