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기계와도 인연은 있나 봅니다 본문
근년, 여름의 혹독한 더위를 경험하고 난 후, 에어컨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에너지절약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20여 년 전의 교통사고 이후 신체 리듬이 붕괴되었는지 여름이면 더위와 땀 때문에 맥을 못 춘다. 더구나 최근 몇 년 간의 더위는 여름이면 항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준의 더위가 아니라 그야말로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동사자보다 더위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는 통계가 그것을 증명한다고 하겠다. 한낮 기온이 사람의 체온보다 높은 39도에 육박한 날이 한 달이나 지속되다보니 폭염의 계절인 7~8월은 더위와 무기력증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지내는 날이 부지기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나 집배원, 파지 줍는 노인들처럼 더위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때때로 나의 너스레가 엄살처럼 느껴지면서 한없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아니 나의 신체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게다가 우리나라는 이제 4계절이 뚜렷한 대륙성 기후가 아니라 봄가을이 사라지고 특히 여름이 긴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이 아열대 공격을 서너 번 속수무책으로 받다 보니 이제는 ‘열대’ 소리만 들어도 기함할 지경이다. 따라서 나에게 에어컨은 호사 가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라 할 수 있다.
집에서 많은 작업을 해야 하는 나는, 거실 이외에도 내 방에 에어컨 한 대 더 놔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우연찮게도 방치된 에어컨 한 대가 있어서 집으로 가져왔다. 사실 이 에어컨과 나의 인연은 제법 깊다. 6년 전쯤인가 고등학교 동문체육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날 마지막 순서인 행운권 추첨 시간에 내가 1등으로 뽑혀 받은 상품이 바로 이 에어컨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대용량 에어컨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동생에게 주었다. 하지만 동생네 집은 아파트 위치 상 맞바람이 들어오는 곳이라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하다며―당시에는 열대야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설치하지 않고 창고에 넣어둔 것을 다시 가져와 민예총에 기증했다. 그래서 한 2년 반쯤 사용되다가 재작년 민예총 사무실에 냉난방기가 설치되고 나서 다시 철거, 최근까지 방치되어 있던 것을 내가 오늘 가져 온 것이다. 청소를 하지 않아 시커멓게 때가 앉은 것을 집에 가져와 물걸레로 닦았더니 이내 반짝반짝 윤기가 돌아왔다. 하긴 이 연식은 오래됐지만 실제 사용기간은 3년도 채 안됐으니 거의 새거나 마찬가지다. 돌아오자마자 에어컨설치를 전문적으로 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해 설치 날짜를 예약했다. 이제 월요일쯤이면 내 방에도 에어컨이 설치될 것이다. 나름 폭염에 대한 대비를 해둔 것이다. 물론 세금 폭탄은 감수해야 하겠지만.... 아무튼 돌고 돌아서 다시 내게로 온 이 사연 많은 에어컨은 확실히 나와 인연이 깊은 게 분명하다. 많이 사랑해줘야겠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어컨도 설치하고 엄마를 웃게 하고 (0) | 2019.04.29 |
---|---|
친구들은 산에 가고 나는 하루종일 잠을 자고 (0) | 2019.04.28 |
극장에 가다 (0) | 2019.04.26 |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 (0) | 2019.04.25 |
봄비의 유혹 (0) | 2019.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