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이가림 시인 유고시집 출판기념회 본문
시인은 삶의 불꽃이 꺼진 후 무엇을 남기는가. 루게릭병은 알지만 또 한편으로 잘 모르는 낯선 질병. 근육이 시나브로 굳어가는 무서운 질병. 의식은 명증한데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어 사소한 의사표시도 어려운 잔인한 질병.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나아가는 그 혹독한 질병을 앓고 있는 시인의 감수성이란 어떤 것일까.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갈무리 하는 시인의 또 다른 감수성이 궁금해서 알면서도, 아니 알 것 같으나 결코 알 수 없는 저 극단의 외로움의 시간, 저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의 시간, 저 감당할 수 없는 낯선 시간을 묻는다. 천연덕스럽게, 마치 전혀 외롭지 않은 듯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듯이, 뜬금없이 활기차게, 활기차지만 속이 빤히 보이게, 보이지만 볼 수 없는 저 감당하기 쉽지 않은, 하지만 감당할 수밖에 없는 시간, 시간들.
이가림, 그가 지상에서 펼친 시간의 성격만큼 다채로운 그의 이미지들. 죽었지만 죽지 않은 그의 시들. 그의 시 속에 오롯이 담긴 말년의 기억들. 때로는 달관한 듯, 또 자주 절망적인 그의 노래. 그 노래의 자줏빛 색깔 속에서 헤아려보는 나의 노래, 나의 방, 나의 문학.... 어쩌란 말이냐, 이 저주받는 감수성을.... 아, 또 어쩌란 말이냐. 이 대책 없는 우호와 빗나감과 숨겨줌과 생색냄과 익숙한 온정주의와……. 하지만 그래. 정 그렇다면, 나는 행복하다. 자기 세뇌라 해도 그냥 읊조리고 싶은 말,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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