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한 장 남은 달력을 떼어 내며 본문
갑자기 날이 추워졌다. 본격적인 겨울이다. 미처 떼어내지 않은 11월의 달력을 떼어내며 지나온 일 년을 생각한다.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다. 직장을 정리했고, 몇 가지 새로운 일을 시작했으며 돈도 제법 벌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 영혼을 위해서는 별로 투자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은 머리맡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어 있고 나는 먼지만큼 많은 술을 마시거나 비루한 감상에 몸을 내주기도 했다. 알량한 명예욕에 영혼을 팔았던 적도 몇 차례 있었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타인에게 전했으며 술자리에서 만난 지인들과 더불어 루머 속 인사에 대한 험담을 일삼기도 했다. 내 몫이 아닌 것을 탐내기도 했고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떠맡아 괴로워한 적도 있었다. 그러는 순간에도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고 그 변해가는 세상으로부터 또 그만큼 격절되고 있었다. 일 년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늘 한 해의 저물녘에는 습관처럼 비감해져 허다한 약속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켜진 건 별로 없고 다시 또 습관처럼 반성하는 나를 보게 된다. 아직 12월은 긁지 않은 복권처럼 내 앞에 있다. 일 년의 허송을 단 며칠만의 실천으로 상쇄할 수는 없겠지만 다가오는 새해를 긴장하며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12월을 치열하게 보내야 할 거 같다. 일단 약속된 원고부터 정리를 하자. 추위가 찾아오니 제법 겨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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