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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바람의 집 본문

일상

바람의 집

달빛사랑 2018. 3. 17. 00:43

바람의 집

 

언 땅에 너를 묻고

귀로에 버스째 들른 곳

생시에 너 살던 동네

비닐하우스 지천

바람은 마른 풀 불어 날리고

몇 가닥 흐린 햇빛으로 우리는

너의 집을 멀리 돌았다

 

담이 없었던 삶

밭 한복판

온몸이 바람막이였던 세월

옷깃 여미며

눈길은 자꾸만 빗나가

구름 언저리 더듬을 때

 

갑자기 한밤 펄럭대던

문풍지 소리라도 들리는 듯했다

두런두런 밤새우던 날이 엊그제 건만

갑자기 너는 죽고

말수가 적어진 우리는 일없이

집 주위를 서성거렸다

 

이제 이 집 떠나면

우리도 오래도록 너처럼

돌아올 수 없으리

죽음은 간명하다

저만치 등마루 꺾으며

성큼 덮쳐 오는 산 그림자

원재길, 나는 걷는다 물먹은 대지 위를, 민음사(2004), 24쪽

 

재길 형을 만나서 확인해 봐야 확실하겠지만, 문득 형의 이 시를 보는 순간, 이건 분명 절친이었던 기형도 형의 죽음을 소재로 한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 속에 나타난 밭 한복판의 집의 이미지도 그렇고 제목인 바람의 집도 그렇다. 이 모두가 (형도 형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형도 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익숙한 이미지이자 표현이기 때문이다. 형도 형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집은 밭 한복판에 오도카니 서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형도 형 역시 겨울판화라는 부제가 달린 바람의 집이라는 시를 썼다. 성석제 선배를 비롯해 원재길, 기형도 등 79학번 선배들은 유난히 친하게 지내던 동기들이었다. 형도 형의 갑작스런 죽음은 아마도 석제 형이나 재길 형에게는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이 시는 분명 죽은 형도 형을 그리워 하며 그를 조상하는 시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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