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한국민예총 대의원총회 선언문(초안) 본문
[한국민예총 대의원총회 결의문]
"광장으로부터, 그러나 다시 광장 저 너머까지!"
87년 6월 항쟁의 성과를 기반으로 민주주의의 확산과 민중 주체 민족민주예술의 실천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된 한국민예총은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그간 건강한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기본적인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순과 적폐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한국민예총은 그 어느 단위보다도 참신한 상상과 그에 근거한 치열한 실천을 경주해왔다고 자부한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건축· 춤 등 거의 모든 예술장르를 망라한 조직의 위용도 그렇거니와 구원성들 하나하나의 명망성과 예술적 성취의 수준 또한 일제치하에서 조직된 카프 이후 가장 강력한 진보적 예술운동 단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민예총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보수적 예술단체와 변별되는 가장 강력한 우리들의 미덕인 도덕적 정당성이란 면에서 살펴볼 때, 우리는 그 동안 우리의 원칙과 우리의 작가적 양심을 올곧게 지켜냈는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그간의 예술적 경험과 실천을 통해서 상업적, 반문화적 흐름을 타격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생명력 넘치는 진보적 대안문화예술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더불어 만들고, 일사불란한 실천을 전개해 왔는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그간 보수정치판의 교묘한 분화와 변신, 그리고 진보정치의 지리멸렬함에 대해 시대의 전위이자 예술가로서 효과적인 응전을 벌여왔는가? 그렇지 못하다. 돌아보라. 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민예총은 최근 몇 년 간 담론생성, 조직운용, 재정확보, 소통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어 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다. 우리는 자만했고, 우리는 방심했다. 예술가들 스스로의 투쟁으로만 쟁취했던 성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외적 성장에 만족하고, 초동 주체들의 개인적 명망성에 기댄 채 기층과 내실을 탄탄하게 만들어내는데 집중하기보다는 패권과 수권에 대한 때 이른 집착을 보였던 것이 우리의 문제였다. 우리는 자만했다. 또한 신자유주의를 이념적 근간으로 한 상업적, 반동적 예술 흐름의 다양한 자기 변신에 대해서도 우리는 효과적인 응전을 하지 못했다. 현실 속 예술운동의 패러다임은 급변하고 있는데도 우리의 사업방식은 구태의연함을 면치 못했다. 우리는 방심했다. 자만과 방심 그로 인한 원칙의 망실과 동력의 상실이 최근 한국민예총의 생생한 민낯이다.
그러나 2017년, 적폐의 청산과 새로운 시민사회 건설을 주장하며 분연히 불타오른 촛불의 행렬이 한결같이 유장한 오늘, 현실과 광장은 다시금 양심적 예술가들을 호출하고 있다. 30여 년 전에도 민중들은 예술가들에게 승리의 전리품처럼 기회를 주었다. 거리에서의 희생과 광장의 성과들을 예술적으로 기리고 운동적으로 확대재생산해 내야 할 임무와 역할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다시 우리는 광장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다시 광장에서 시작한다. 초심을 생각하며, 우리가 잊고 있던 원칙을 확인하고, 우리가 놓쳤던 연대를 기억하며, 우리가 집중했던 모든 것들 속에서 폐기해야 할 오류와 보존해야 할 합리적 핵심을 명확하게 변별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광장과 밀실을 기계적으로 나누는 소아병적 조급주의를 청산하고 광장과 밀실의 성과와 한계를 변증적으로 종합하여 더욱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한국민예총은 거듭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작년 이 맘 때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정책의 종언을 선언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예견대로 박근혜 정권은 민중생존권은 물론 시민들의 문화주권까지 철저하게 유린했다. 비선실세 최 모의 전횡 폭로를 계기로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난 권력의 치부를 목도하며 이제 우리는 현 정권의 문화정책에만 한정하여 종언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 파렴치한 정부의 완전한 종언을 엄숙하게 선언한다. 물론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현 정권의 축출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끝이 아님은 명백하다. 광장에서 시작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광장 저 너머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해방과 진정한 민주의의, 민족통일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모든 장르, 모든 유형의 예술을 무기로 다양한 층위의 연대를 만들어가며 끝까지 싸워나갈 것을 다짐한다.
하여 한국민예총은 현재의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매의 눈으로 사태를 주시하며 다양하게 확보하고 있는 각각의 예술적 무기를 벼리는 작업에 게으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고민과 실천을 통해 우리는 2017년을 새로운 나라의 건설과 지역분권 및 네트워크 시대를 힘차게 열어갈 유력한 주체로서 거듭나는 한 해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시대와 민중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치들이고 예술가적 자존을 지키는 길이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예술가들이다.
―우리는 예술을 매개로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완수를 위해 투쟁한다.
―우리는 민중의 생존권과 자유로운 상상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권력에 저항한다.
―우리는 예술의 가치와 예술가의 자존을 훼손하는 모든 억압기제들을 거부한다.
―우리는 현 정권 내 부정부패 핵심 연루자와 직간접적 부역자의 완전 척결을 위해 투쟁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진보적 예술의 현재적 가치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들과 연대한다.
2017년 2월 25일
(사)한국민예총 대의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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