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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최악의 하루'(한예리 주연) 본문

리뷰

[영화리뷰] '최악의 하루'(한예리 주연)

달빛사랑 2017. 1. 5. 13:42


최악의 끝에서 최상의 꿈을 꾸다

영화 최악의 하루를 보고

 

개요 : 멜로/로멘스, 93. 2016825일 개봉

감독 : 김종관

출연 : 한예리(은희), 이와세료(료헤이), 권율(현오), 특별출연 이희준(운철)

 


 

서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최악의 하루는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살아가는 메가시티 서울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주는 하나의 선물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은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을 비롯하여, 과연 그곳이 서울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서촌을 영화적 공간으로 백분 활용하고 있다. 확실히 여름날의 끈적거림과 짜증스러움처럼 개운하지 않은 인간관계의 난맥을 시원하게 날려줄 공간적 배경으로 남산의 산책로와 인파로 복닥거리지 않는 서촌을 선택한 것은 감독의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얼핏 단순해 보인다. 즉 배우 지망생 은희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가 주된 서사이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의 곳곳에 단순하지 않은 영화적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이야기를 중층적으로 만들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이 영화가 액자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표면 서사 속에 숨겨진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늦여름 서촌의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는 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난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중학생 수준의 영어 구사만으로도 이상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료헤이와 헤어진 후 은희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권율)를 만나러 촬영지인 남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한 때 은희와 잠깐 만났던 적이 있는 남자 운철(이희준)은 은희가 남산에서 올린 트위터 내용을 보고 은희를 찾아 남산으로 온다. 결국 하루 동안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까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관객들은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를 제외한 나머지 두 남자의 캐릭터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러한 캐릭터들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만나고 있는 삼류배우 현오, 그리고 이전에 만나다 헤어진 유부남 운철, 이 두 사람은 사랑에 관한한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은희와의 만남을 유지하거나 혹은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지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정으로 사랑할 자신도 없으면서 눈앞의 이성은 놓치고 싶지 않은 그들은 비열해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의 제목이 최악의 하루인 이유는 바로 은희가 그들을 만나면서 감당해야 했던 지질함과 그로 인한 환멸 때문인 것이다.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때나마 그들을 사랑했던 자신에 대해서도 은희는 환멸을 느꼈을 것은 뻔하다. 현오는 그저 은희를 섹스파트너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과거에 만났던 운철은 자신의 아내와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싱글처럼 행동하며 은희와 만나왔던 것인데, 특히 남산에서 우연하게 만난 운철은 다시 아내와 재결합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그것은 형식적인 사랑일 뿐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은 은희 뿐이라며 다시 사랑을 시작하자고 비굴하게 울먹이기까지 한다. 은희로서는 정말 최악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희 역시 사랑의 순정함에 있어서는 떳떳하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다. 순간의 욕망 때문이든 외로웠기 때문이든 현오와의 연애 기간 중에 운철에게 여지를 준 것은 은희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각자의 이기심들이 그들 모두에게 짜증스런 결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공간(남산)에서 세 사람이 조우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은희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조바심을 냈던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남산에서 결국 맞닥뜨리게 된다. 그 상황에서 현오는 은희에게 분개하고 운철은 운철대로 황당해 하면서 은희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추궁을 하는데 그 상황에서 관객들 또한 쓴웃음을 짓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오와 운철은 소주나 한 잔 하자며 둘이서 산을 내려가고 짜증으로 폭발직전의 은희는 홀로 길을 걷다가 료헤이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의 끝에서 오늘 처음 만난 료헤이와 다시 조우하게 되는 것인데, 감독은 이 장면을 무척이나 환상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많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영화가 이 부분까지 진행되었을 때 관객들은 은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바로 료헤이의 소설 속 이야기와 부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료헤이는 당신의 소설에는 해피앤딩이 없다는 말과 더불어 소설 속 인물들에게 너무 잔인한 게 아니냐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이러한 지적에 대해 료헤이 스스로도 내 소설에는 해피앤딩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은희의 하루 역시 해피앤딩은 고사하고 가장 최악의 상황이 연출된 하루였지 않은가. 그런데 남산에서 은희를 다시 만나게 된 마지막 장면에서 료헤이는 밤길을 걸으며 은희에게 남산이 나오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며 그것은 아마도 해피앤딩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은희는 춤을 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전면의 환한 빛 속으로 걸어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감독은 관객들에게 최악의 하루를 보낸 은희에게 새로운 로맨스가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도 강한 여운을 남겨주고 있는 것이다. 은희가 최악의 순간을 맞이할 때 소설가 료헤이를 만나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 이야기와 외부의 이야기가 경계를 허물며 도약하는 마지막 시퀀스는 이 영화가 부리는 마법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최상의 아름다움은 최악의 끝에서 비로소 발화되는 자존심 강한 꽃인 지도 모르겠다.


 


일단 영화의 스토리라인이 범인들과는 거리가 먼 낯선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이 영화는 설득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초반부터 길을 찾아 헤매는 료헤이 (이와세 료)의 모습이나 연기 연습하는 은희 (한예리)의 모습에서 컷을 많이 나누지 않고 롱 테이크로 촬영을 해 이 영화가 갖는 사실적인 느낌을 더욱 배가한 것 또한 감독의 감각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주연 배우 한예리의 자연스런 연기는 이 영화의 화룡점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실제의 은희가 자신의 연애사를 연기하듯 작품 속 인물과 현실의 배우 사이에 전혀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연기, 한예리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현실에서 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어봤거나 현재 연애 중인 커플들 그리고 장차의 사랑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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