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사랑을 세뇌시키다... 본문
동물들이 서로 냄새에 취해서 짝을 찾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발정기가 되면 수나방은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암컷이 내뿜는 ‘붐비콜’이라는 페로몬 냄새를 맡고는 날개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흥분해서 암컷을 찾아 나선다. 사람에게도 일종의 페로몬이 방출되어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준다는 보고는 이미 오래 전에 있었다. 매클린톡 박사가 익그는 미국 시카고 대학 연구 팀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연구한 논문을 2002년 과학 전문 잡지 <네이처 지넥키스>에 발표했다.
사람에게는 흔히 살냄새라 부르는 개인마다 독특한 채취가 있다. 사람마다 이 냄새가 다른 이유는 우리 몸의 면역 세포에 존재하는 MHC라는 물질 때문이다. 이 MHC는 면역계가 성숙되는 과정에서 유전적 특성과 환경적 특성에 따라서 개개인의 상황에 맞게 형성된다. 따라서 개인의 체취는 미미하긴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다.
매클린톡 박사는 MHC가 다른 남성 6명에게 48시간 동안 똑같은 셔츠를 입혀서 체취가 흠뻑 배어들게 했다. 그런 다음 미혼 여성들에게 셔츠 냄새를 맡게 해, 어떤 냄새에 가장 끌리는지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유전적 특성, 즉 MHC 타입에 따라서 여성들은 저마다 다른 냄새를 좋아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골라낸 셔츠 주인의 MHC 타입을 조사해 보니, 여성 자원자들은 저마다 자기 아버지의 MHC 타입과 비슷한 셔츠를 골랐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여성들은 처음 만난 남성이 자기 아버지와 체취가 비슷할 때 가장 강하게 끌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의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어미젖을 찾아 물며, 심지어는 비틀거리며 걷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 이 정도가 되려면 엄마 뱃속에서 20개월은 있어야 한다. 이러니 갓난아기의 감각이 미숙한 것은 당연하다. 생후 한 달 정도 지나야 특정 소리를 구별할 수 있고, 3개월은 지나야 제대로 초점을 맞춰 물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미숙한 아기들도 미각과 후각만은 꽤 발달한 상태에서 태어난다. 후각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발달해 있어서 아기는 어머니의 친숙한 젖 냄새와 체취를 편안해 한다. 매클린톡 박사의 말에 따르면 여성들이 아버지의 체취와 닮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체취에 대한 선호도는 여성 자신과 전혀 달라도 호감도가 떨어지지만, 반대로 너무 비슷해도 호감도가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를 유전적으로 설명하면, 자신과 너무 다른 유전자는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두렵고, 너무 비슷하면 자손에게 유전 질환이 유전될 수 있고 유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안은 자신의 유전자와 똑같지는 않지만 안심할 수 있는, 아버지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남성을 택하는 것이다. 여기에 진화론적 설명을 곁들인다면 한 여성이 무사히 자라나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튼튼한 후손을 낳기 위한 본능은 이미 검증된 유전자를 선택하도록 만든다는 이론도 성립할 수 있다.
여성들이 근친과 결합하는 것은 금기시하면서도 아버지와 비슷한 체취의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전혀 다른 유전자형과 결합하여 새 조합을 만들어 내는 욕망과 이미 검증된 생존 가능한 유전자를 선택해 안전하게 후손에게 전달해 주려는 욕망 사이에서 선택한 최선의 결과로 생각된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존 가능성을 더욱 높인 것이다. 유전자는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상대를 찾아낸 순간, 개체를 사랑이라는 달콤한 묘약에 빠뜨려서 조종한다. 보이지 않게 우리 몸 속 깊은 곳 세포 하나하나에서 그러나 강력하게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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