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당신을 이제는 잊었어요 (4-19-토, 비) 본문
종일 비 내렸다. 전날 혁재와 마신 술로 취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체했다. 새벽에 속이 메슥거려 잠을 설쳤다. 기시감대로라면 속이 편해지는 가장 빠른 길은 구토를 해서 위장에 머물러 있는 신물을 뱉어내는 것이다. 저절로 구토가 나올 때도 있지만 직접 손가락을 넣어 구토를 유발할 때도 있다. 오늘이 그런 경우였다.
생각해 보니 어제 혁재 작업실에서는 한산소곡주와 소주를 마셨고 임기성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소맥을 마셨으며 간석동 카페 ‘산’에서는 혁재와 막걸리를 마셨다. 네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신 것이다. 더구나 어제는 아침에 달걀 한 개와 방울토마토 서너 개를 먹고 사무실에 나왔고 점심에도 밥 대신 과자들로 끼니를 대신한 터였다. 그런 상태에서 네 종류의 술을 섞어 마셨으니, 속이 편할 리 없다. 그래도 토하고 나면 속이 편해진다. 그래서 억지로 손가락을 넣어서라도 토하는 것이다.
가끔 이전에 관심 뒀던 사람들의 소식들이 각종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해진다. 어떤 때는 같은 (사람이나 뉴스) 글에 댓글을 달거나 반응을 남기면서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이전 같았으면 그런 상대의 흔적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나 마음이 무척 혼란스러워지곤 했으나 이제는 그렇지는 않다. 그냥 ‘흠, 잘 지내는군’이거나 ‘여전하군’ 하면서 피식 웃고 넘어간다. 시간이 붙여준 근육으로 마음이 제법 단단해진 것이다.
다만, 좀 유치하긴 하지만, 뭔가 나도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이렇게 의식하는 걸 보면 또 아직 마음이 완전히 정리된 게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혼자 있을 때 그 사람이 자꾸 생각나거나 일을 방해하거나 하진 않는 걸 보면, 그건 상대에 관한 애정이나 관심이 아니라 자존심인 듯하다. 한데 또 굳이 자존심을 지키고 싶을 만큼 의식한다는 건 마음이 개운하게 정리된 게 아닌 듯하기도 하고…….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무척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며칠 전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겠다고 결심해 놓고, 오늘 냉면에, 라면에, 야식까지 먹었다. 물론 온갖 종류의 채소를 넣은, 그야말로 건강 냉면, 건강 라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당뇨와 체중 관리에는 쥐약들이다. 왜 나는 이리도 식욕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소식가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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