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연휴 셋째 날 ❙ 평온한 명절 (9-16-월, 비 오고 갬) 본문
요 며칠 계속된 불면 때문에 침구의 방향을 바꿨다. 혹시 북쪽에 머릴 두고 자서 그런 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풍수나 수맥에 관한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와 머리를 북쪽이나 수맥이 흐르는 방향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걸 들은 바 있다. 상기한 전문가들의 주장을 듣다 보면 일견 ‘그럴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그 주장들이 과학적으로 맞는 얘기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만에 하나 플라세보 효과라도 얻어볼 생각으로 잠을 설치고 일어난 늦은 아침 침구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일단 오후에 낮잠을 잤을 때, 생각보다 단잠을 잔 걸 보니 적어도 플라세보든 뭐든 효과는 있어 보였는데, 사실 잠자는 방향을 바꾼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니 낮잠이 달게 느껴진 건 잠자리의 방향 때문이 아니라 절대 수면 시간의 부족함, 식사와 운동 후의 나른함 때문일 게 분명하지만 나는 플라세보일지언정 며칠 만이라도 단잠의 즐거움을 만끽하려 한다. 아마도 동쪽에 머릴 두고 자는 게 익숙해질 때쯤 다시 또 원래의 위치(북북동)로 돌아올 게 뻔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일, 이를테면 온 방 안을 뒤집어엎는 걸 은근히 즐긴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 나는 일부러 책장의 책들이나 컴퓨터의 위치를 재배치한다. 그뿐만 아니라 신발장의 운동화를 세탁하거나 목욕탕과 주방을 대청소한다. 그렇게 일에 집중할 때는 잡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게다가 모든 걸 끝냈을 때, 깔끔해진 주변을 바라보며 느끼는 뿌듯한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침대의 방향을 바꾸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저녁에는 누나들이 사 놓은 돼지고기를 굽고 소고기로 미역국을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운동을 마치고는 아이스크림도 한 통 먹었고 샤인머스캣과 맥주 한 캔도 먹고 마셨다. 비록 혼자 맞는 명절이지만, 명절 전야 분위기를 한껏 누렸다. 종일 휴대전화에서는 문자가 왔다는 알림음이 들렸다. 고마우면서도 귀찮다. 받았으면 답장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담을 주기 싫어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의례적인 안부나 절기 인사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다 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당신은 안부와 덕담 문자가 좋습니까, 아니면 귀찮습니까?’ 하고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렇든 저렇듯 평온한 명절 연휴 셋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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