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추석 연휴 첫날 ❙ 부고를 받다 (9-14-토, 대체로 맑음) 본문
오전에는 채소 가게 들러 양파와 가지, 두부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도 한 통 샀다. 대체로 청소하고 운동하고 낮잠 자며 오후를 보냈고 저녁에는 누나들이 족발과 도토리묵, 자두와 각종 반찬거리를 가지고 집에 와서 함께 저녁 먹었다. 막내만 빼고 모두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우리 3남매는 자주 만나 밥 먹는다. 확실히 북적거리며 함께 먹는 밥이 맛있고, 밥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도 맛있다. 밥을 다 먹고 상을 치우던 큰누나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조카는 아버지 없이 맞이한 첫 번째 명절이라서 엄마가 걱정됐던 모양이다. 큰누나는 일부러 큰소리로 “이모와 함께 큰삼촌네 왔어.”라고 수화기 너머 조카에게 말했다. 욕실에서 이를 닦던 나는 아들과 나누는 큰누나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내 아들 수현이도 연휴 중에 나에게 전화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10시 30분쯤 부고를 받았다. 좋아하는 조각가 배진호 선배가 운명했다는 부고였다. 나와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선배여서 그의 이른 죽음이 너무도 슬프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예상 밖의 죽음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결국’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왜냐하면 선배가 생전 워낙 술을 좋아했고, 몇 년 전까지 건강이 안 좋아 정양을 위해 당진 어딘가로 내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로웠던 양반이 죽는 날짜는 귀신같이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명절 근처가 기일이면 가족들의 기억에서 잊힐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마시면 소주를 하루에 열 병도 마셨으니, 몸이 어떻게 견뎠겠는가. 그를 알게 되었던 십수 년 전부터 그는 이미 술잔을 들 때마다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동안 많이 좋아졌다며 “부평으로 이사 왔어요. 문 시인. 한번 놀러 와요.” 하며 수줍게 전화하던 그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전화만 몇 차례 나눴을 뿐 나는 새로 이사 간 그의 집에 끝내 방문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결국’ 그의 부고를 받았다. 내일 빈소인 세림병원에 다녀와야겠다. 고인의 영원하고 평안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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