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갑작스러운 부고, 사람의 일이란.... (5-24-금, 맑음) 본문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나는 지금쯤 배낭을 챙기고 있었을 게다. 진안 산속으로 낙향한 영택과 희순 부부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창길, 혁재, 나 이렇게 셋이 시간을 맞춰 정말 오랜만에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창길이 전화했다. 받을 때만 해도 내일 떠날 여행 때문에 전화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창길은 “형, 영택이 형 아버님 돌아가셨대요” 했다. 부고를 접한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일이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하필이면’이란 말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인 모양이다.
점심때쯤 혁재가 전화했다. 그는 만석동에 있는데, 문학동 어머니께 들렀다가 와야 한다고 하기에 오후 서너 시쯤으로 함께 조문 갈 시간을 맞췄다. 장례식장이 경희의료원이라서 일찍 갔다가 일찍 오기로 했다. 오고 가는 데 4~5시간이 소요된다. 서너 시에 출발해도 도착하면 대여섯 시, 빈소에서 오후 8시에 나와도 인천에 도착하면 10시다. 준비되는 데로 전화하라고 혁재에게 일러놓고 나는 서둘러 점심을 먹었다.
점심 설거지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아서 졸고 있을 때 혁재에게 전화 왔다. “형, 오늘은 어려울 거 같아요. 로미가 오늘은 시간 낼 수 없다네요. 그래서 로미와 내일 가기로 했어요. 형은 어떡하실래요.” 했다. 로미도 영택, 희순 부부와 각별한 사이이니 빈소에 가겠다고 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래? 알았어. 난 걱정하지 마. 알아서 갔다 올게.”하고서는 바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일단 주안역으로 가서 1호선으로 갈아탄 후 회기역에서 하차했다. 꼬박 1시간 30분이 걸렸다. 회기역에서 경희의료원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10분쯤 이동해서 마침내 4시 30분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빈소에 들어가니 까만 얼굴의 영택이와 희순이가 나를 맞이했다.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마침 노동자문화운동 하던 조 모 선배가 일행들과 먼저 와 있어 그들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내 자리로 온 영택, 희순과 그간의 안부를 나눴다.
두 시간쯤 지나자 8남매 중 맏이였던 영택 아버님의 형제와 친척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접객 테이블이 부족해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안내하는 영택의 조카가 빈 테이블을 찾으려 눈을 돌리다가 나와 서너 번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눈치를 준 건 아니지만, 시간도 얼추 7시쯤 되었고, 자리도 번잡해서 희순에게 “그만 가볼게” 하며 일어났다. 옆자리 조 선배는 “더 있다가 창길이 오면 보고 가지, 왜?” 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옛 동지들을 만나고 가겠다며 일어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덜 지루했다. 물론 똑같이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집에 도착하니 9시, 갑자기 칼칼한 게 먹고 싶어 다시 나가 슈퍼에서 농심 ‘너구리’ 매운맛 두 봉지를 사 왔다. 땀에 절어있다가 샤워하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샤워를 끝내고 두 봉지 다 끓여 먹었다. 제고 동기 중에서 경희대와 외국어대를 인천에서 통학한 친구들이 있는데, 오늘 갔다 와보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서너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는 일은 효율 면에서도 정말 삼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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