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동창들과 술 마시다 ❙ 윤가네 포차 (4-22-월, 맑음) 본문
월요일부터 술이다. 퇴근 무렵 고교 동창 밴댕이(기홍이)가 전화했다. 어제 딸을 시집보낸 치과의사 고구마(성국이)가 몇몇 친구들과 소주 한잔하고 싶다며 (밴댕이에게) 연락을 부탁한 모양이었다. 집에 가방만 놓아두고 이내 다시 나와 기홍이가 보내준 약도를 보며 산곡동 근처에 있는 실내포장마차 ‘윤가네 포차’를 찾아갔다. 찾아가기는 수월했다. 집 앞에서 3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부평사거리’ 정류장에서 14-1번으로 갈아탄 후 서너 정거장 가니 약속 장소가 나왔다.
제일 먼저 도착한 나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멍게와 소주를 주문했다. 3잔을 마셨을 때 밴댕이(기홍이)가 도착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동족 광어회를 주문했고 나는 쫄깃쫄깃한 돼지껍질(일명 껍데기)을 주문했다. 잠시 후 샌님인 용창이 도착했고, 이어서 돌쇠 장근만이 도착했으며, 30분쯤 뒤에는 고구마 성국이가 자신의 반려인 시현과 더불어 나타났다. 결혼식 과정이 무척 힘들었는지 불과 며칠 사이에 볼이 홀쭉해져 있었다.
기홍이와 성국이가 번갈아 하는 말을 정리해 보니, 사돈댁이 엄청난 부자 집안인 데다가 인맥이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례가 정치 9단 김종인이었고, 참석한 하객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대거 눈에 띄었으며, 신랑 친구의 축하 영상 속에 등장한 인물은 놀랍게도 유명 탤런트 장근석이었다며 밴댕이 기홍이는 무척 흥분한 말투로 상황을 전해줬다. 아무튼 성국이가 부자 사위를 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고 하객들 식사를 위해 16만 원짜리 뷔페를 계약한 건 지나쳐 보였다. 사돈 쪽에서 그렇게 했다는데, 물론 자기 돈 쓰는 걸 갖고 뭐라 하기는 그렇지만, 이 불경기에 1인당 16만 원짜리 식사라니,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졸부 냄새가 풀풀 났다. 기홍에게 듣기로는 바깥사돈이 원불교 중앙교의회 간부 임원이라고 하던데, 원불교에서는 무소유를 내세우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성국이와 같은 처지(자식 결혼식 때문에 이혼한 본처와 쇼왼도 부부 행세를 해야하는 일)라서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랜만에 만난 전처와 사진을 찍고 어깨동무를 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어제 참석하지 않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죽하면 성국이의 아버지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윤가네 포차’에서 나와 성국 내외는 먼저 들어가고 나와 용창, 근만, 기홍은 근처 맥줏집에서 2차를 했다. 한 시간쯤 마시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서 나는 중간에 먼저 나왔다. 올 때와 반대로 차를 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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