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습관의 힘 (2-25-일, 흐리고 비) 본문

물론 고마운 습관도 있지만, 습관은 대개 무섭거나 밉습니다. 한편, 자신이 제 몸과 마음에 스스로 길들여 놓고 자기를 비판하기보다 습관 자체를 미워하거나 무서워하는 일은 참으로 우습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자신이 조는 사이에 자주 가던 기루(妓樓)를 ‘기특하게’ 스스로 찾아간 말의 목을 벤 김유신은 정말 우습고도 치졸한 사내라는 말이지요. 도대체 말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물론 애마를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나쁜 습관을 고쳐보려는, 그야말로 읍참마속의 심정이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말의 목을 겨냥한 칼은 실상 자기의 목이나 손목으로 향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애꿎은 말의 목은 왜 벤답니까? 못난 인사 같으니라고.
이처럼 일국의 대장군을 ‘못난 놈’으로 만들 만큼 습관, 그중에서도 나쁜 습관은 힘이 강합니다. 자기 스스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만큼 무섭고 강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쁜 습관일수록 쉽게 몸에 배고 그것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력이 드는 법이지요. 술과 담배만 해도 그렇잖아요. 늦잠을 자거나 지각하는 습관은 귀여워 보일 정도입니다. 두 사람만 모여도 남의 험담을 하는 것, 강한 사람 앞에서는 아첨을 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것, 이성만 보면 껄떡대는 것, 쉬는 날이면 자꾸만 누우려고 하는 것 등등, 별다른 악의 없이 행하는 나쁜 습관들을 열거하자면, 글쎄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몇 날 며칠 밤낮을 새야 할 걸요.
물론 좋은 습관도 없진 않아요. 지저분한 것을 보면 치우고 정리하는 습관, 매일매일 일기 쓰는 습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 등등 찾아보면 없진 않겠지요. 하지만 솔직히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면 나쁜 습관이 몇십 배는 많은 것 같아 씁쓸합니다. 당장 생각나는 나쁜 습관들을 열거하면 아마도 좋은 습관의 수십 배는 될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나는 현재 나쁜 습관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말이겠지요. 오늘만 해도 나쁜 습관들은 나를 철저하게 지배했어요. 그래도 일말(一抹)의 자의식은 남아 있어서 무엇이 나쁜 건지는 인식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아무튼 오늘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유튜브나 영화만 보고 있노라니 문득 습관에 지배당한 나의 가여운 몸과 마음에 생각이 미치더군요. 순간 극심한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물론 습관의 힘이 강력한 건 알지만, 어쩌다가 내 정신과 육체 모든 부면에 이토록 많은 나쁜 습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건지 놀랍고도 슬펐습니다. 그러면서 김유신을 생각했고, 그가 참 한심한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돌려 생각하니 과연 내가 김유신을 못난 사람이라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방법의 옳고 그름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그는 애마의 피를 뒤집어쓰면서까지 습관을 고쳐보려 노력했던 거잖아요? 나에게도 과연 그런 결단과 용기가 있기는 한 걸까요?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쁜 습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흡연 습관을 떨쳐냈잖아요. 그것도 단박에 금연했잖아요? 대단한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나에게도 그런 용기와 결단력이 없는 건 아닌 거지요. 다만 계기가 없어서 내연하고 있는 거지요. 물론 외적인 계기가 없어도 스스로 내적인 계기를 만들어 나쁜 습관을 발본하려는 의지를 발현하는 것, 그게 진짜 용기고 결단력이겠지요. 하지만 시작이 중요해요.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가장 강력한 나쁜 습관을 이겨낸 바로 그 승리의 경험을 환기하며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당장 오늘부터 나쁜 습관을 몸과 마음으로부터 하나씩 둘씩 떨쳐내기 위한 구체적 행동에 돌입해야겠어요. 이를테면 TV나 PC를 켜놓고 잠드는 습관부터 고쳐봐야겠어요. 술자리에서 남의 험담하는 것도 고쳐보고요. 아니다 싶은 일을 온정주의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습관도 버려 볼 생각입니다. 습관은 힘이 세지요. 그건 알아야. 하지만 내가 더 강해지면 되는 거예요. 어차피 내 몸과 마음에 붙어 있는 것이니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일 거 아니에요? 그렇지요?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유행가 가사가 큰 힘으로 다가오는 일요일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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