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꽃들의 웃음소리를 기다리며 (2-23-금, 맑음) 본문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보았습니다. 물론 종일 맑았던 건 아닙니다. 구름과 해가 서로 술래를 바꿔가며 종일 숨바꼭질했습니다. 나는 지난밤의 숙취를 달래며 느긋하게 오전을 보내다가 간간이 비서실에서 넘어온 원고들을 처리해 주었습니다. 환기를 위해 자주 창문을 열었지만 그다지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화초들도 이제 테라스로 나가 봄바람을 맞을 때가 된 듯합니다. 물론 아직은 늦겨울의 몽니가 완전히 누그러지진 않아서 한두 번의 독한 꽃샘이 찾아올지도 모르겠어요. 매번 느끼듯 겨울은 참으로 집요하잖아요. 하지만 그 집요함을 마침내 이기는 건 어김없는 자연의 시계 아니겠어요? 그 시계를 믿기에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맵찬 바람도 견딜 수 있는 거고요.
그래요. 이제는 확실히 칼바람과 눈발의 계절은 저물고 순한 바람과 꽃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처처에서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때로는 행진곡처럼 때로는 자장가처럼 들려올 거예요. 내 거실의 화초들도 푸른 잎과 말간 새순을 내놓으며 분주한 봄날의 삶을 살아가겠지요. 늙은 나도 꽃들과 더불어 얼굴이 말갛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 안 된다면, 나는 내가 바라는 꽃들을 심겠습니다. 화분에도 심고 마음에도 심고, 그렇게 곳곳에 꽃밭을 만들고, 가끔은 내가 꽃씨가 되어 누군가의 마음 밭으로 날아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그렇게 분주하게 살고 싶어요.
염치없는 세상, 꼴불견의 정치와 담을 쌓고 지낼 수만 있다면 내가 꽃밭의 주인이 되거나 누군가의 마음 밭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을 듯도 싶은데, 불행하게도 내 집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몰염치와 꼴불견을 견뎌야만 하루를 간신히 살아낼 수 있다는 게 현실입니다. 몽상가의 삶과 리얼리스트의 삶을 절묘하게 절충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든 이곳의 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꽃들은 기어이 이곳을 덮을 것이고 꽃향기는 천지에 가득하겠지요. 지금은 그 사실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겨울이 없다면 봄꽃이 '저만큼' 아름답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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