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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모든 날이 축복은 아니지만 (2-16-금, 맑음) 본문

일상

모든 날이 축복은 아니지만 (2-16-금, 맑음)

달빛사랑 2024. 2. 16. 23:22

 

참 좋다. 바람은 순해졌고, 마음은 평화롭다.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도 나쁘지 않다. 건강은 특별히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더 나빠지지도 않았다. 불편했던 사람들과의 거리도 조금은 좁혀진 듯한데, 이건 나 혼자 생각이어서 그들과의 거리가 실제로 좁혀졌다고 명시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불편한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은 범주가 다르다. 나는 다만 불편함에 대해 너그러워졌을 뿐이다.

그렇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줄 마음은 여전히 없다. 내가 지금 미워하는 사람은 '나만 미워하는 사람'이 아닐 거라는 믿음이 나를 안심시킨다. 이를테면 푸틴이나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독재자처럼 전쟁광이거나 인종주의자들, 타락한 성직자들, 어린아이와 노인과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자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자들, 현 정부의 기획자들과 담지자들, 진실을 왜곡하는 파렴치한 언론인들, 국민을 팔아 떠세하는 정치인들, 동물을 학대하는 자들..... 이 많은 괴물에게 줄 이해와 용서의 마음이 내게는 없다. 이들을 미워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내게 있어서 다행이다. 너무 쉽게 그들을 용서하는 건 너그러움이 아니라 서푼짜리 온정주의이거나 숨은 진실을 읽지 못하는 무지함이다. 미움이 미움을 낳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워해야 할 것을 미워하는 일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고 보니 마치 내 마음속에는 좋고 아름다운 것보다 밉고 파렴치한 것들만 가득한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세상을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하면 사흘 낮 사흘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거다. 저녁노을, 문득 만나는 하늘, 가지 위에 앉은 새, 봄여름가을의 꽃들, 사랑하는 이의 웃음, 아침에 만나는 미화원의 빗자루질, 아이들의 웃음소리, 월급이 들어왔다는 문자, 사랑하는 당신, 인류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 산정에서 내려단 본 세상, 떨어지는 벚꽃, 호수 위의 백조, 노동자의 땀방울, 엄마의 자장가, 엄마의 기도소리, 엄마의 웃음소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만 생각해도 가슴 뛰는 일들을 수백 가지는 말할 수 있겠다. 세상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게 훨씬 더 많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날이 나에게 축복의 날은 아니지만, 지금 나는 참 좋다. 교만하지 않을 정도의 수입과 가끔 나를 놀라게 하는 친구 같은 상상력과 착한 감수성, 나를 생각해주는 참 좋은 사람들, 그리고 듣고 걷고 먹고 말하는 데 지장 없는 신체, 손 닿는 곳마다 나를 기다리는 책들, 그리고 기다림을 힘겨워하지 않는 인내심이 내게는 있다. 그래서 참 좋다. 오래 좋았고, 잠시 힘들었으나, 여전히 좋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도 무척 행복한 사람일 거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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