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통증에 관한 주관적 보고서 (9-8-금, 맑음) 본문

마음의 통증이든 육체적 통증이든 나 역시 내 또래 평균치의 통증을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9살 무렵 팔도 부러져 봤고, 30대에는 생사의 경계를 헤맬 정도로 크게 교통사고도 당해 봤으며, 알다시피 치과 치료에는 이골이 날 정도다. 마음의 통증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일찍이 나를 끔찍이도 사랑해 주던 자애롭던 친형이 어린 나이에 요절했고, 사춘기 때에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사를 전전해야 했으며, 숱한 연사와 이별, 시대와 타협하지 못한 채 잠 못 들고 괴로워하던 스무 살, 서른 살 시절의 수많은 날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친구 사업의 보증을 섰다가 잘못되어 집과 재산을 날리고 작은 빌라로 이사 가게 되었을 때, 오히려 괜찮다며 나를 위로하던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미안하고 고맙고 처연했던 마음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게다가 나는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 가지 않아도 될 재판정을 들락거리며 인간에 대한 염증과 세상에 대한 환멸로 입과 가슴에 칼을 품고 살기도 했다. 그 당시 견뎌야 했던 마음의 고통을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참 희한하기도 하지. 당시에는 단 한순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그토록 다양하면서도 엄청난 고통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추억처럼 혹은 훈장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시간의 치유력과 윤색 능력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참으로 대단하다.
내가 치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 작은누나는 "나는 통증 때문에 임플란트 안 할 거야. 차라리 틀니를 하고 말지. 어떻게 생살에 구멍을 뚫고 이물질을 박아 넣니?"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마다 나는 '막상 겪어 보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오히려 그녀가 살아온 삶의 신산함이 훨씬 큰 통증이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결국 통증의 객관적 강도(만약 이런 게 있다면)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인물의 주관적 상상과 경험의 윤색이 만들어 낸 통증의 이미지가 훨씬 그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은 맞아 본 후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통증'을 온갖 두려운 상상을 하며 기다리다 만나는 일은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통증은 내성이 없다. 두 번 당하면 두 번 모두 괴롭다. 오로지 시간만이 치료해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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