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그 새벽이 나를 살렸다 (9-2-토, 맑음) 본문
모임이 하나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장소도 멀리 신포동이었고, 저녁을 규칙적으로 먹어야 하는 나의 조건과 너무 맞지 않는 시간대였다. 내가 몇몇 '입이 빠른' 사람에게 현재 나의 상황을 다소 과장해서 이야기를 해놓았기 때문인지 지인들은 대체로 나의 칩거를 수긍하는 편이었다. 당분간 이대로가 좋다. 모임을 기피한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잖은가. 물론 생각해서 불렀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한다면 그건 부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힐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한들, 그게 뭐 대수랴. 나의 경우는 딱히 내가 속한 모임들이 싫거나 특별히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중장기적 계획과 최근 몸에 배기 시작한 일상의 루틴을 깨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 개인으로서는 '제대로 살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다.
서너 달 전 새벽, 문득 내 모습이 가여워 눈물 날 지경이었던 그때, 아침이 환하게 밝아올 때까지 잠들지 못한 채, 나의 전 생애에 관해 하나하나 곱씹어보지 않았다면, 그 새벽, 추레한 내 모습을 전신 거울에 비춰보지 않았다면, 지인들이 보내준 새로운 시집이 소복하게 쌓여 있던 책상 앞에 앉아 그 이름들을 들춰보지 않았다면, 또는 엄마의 기도와 애인들의 바람에 관해 떠올려 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지금까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거나, 매일 아침을 시린 가슴으로 맞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때 도대체 어떤 힘이 나를 추동해 병원을 찾게 했고, 변화를 결심하게 했으며, 치과의 문을 두드리게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나의 의지만이 아닌 모종의 힘이 그 새벽에 나를 감싸 안아주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더 이상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한계상황에 몰렸을 때,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문득 '여호와 이레'처럼 새롭게 열리던 '문 혹은 길'을 나는 기억한다. 매번 '그 문'을 통과하고 '그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그 새벽, 수많은 생각이 일시에 몰려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그때, 몸은 피곤했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아니 돌아가선 안 된다는 절박함에 가슴을 떨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때의 벅찬 느낌, 뭔가 나에게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될 것 같다는 조짐 혹은 결단의 대견함에 부르르 몸을 떨었던 그 새벽, 잊을 수 없다. 그 새벽이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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