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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가는 겨울의 몽니치곤 제법 집요하군 (01-27-금, 맑음) 본문

일상

가는 겨울의 몽니치곤 제법 집요하군 (01-27-금, 맑음)

달빛사랑 2023. 1. 27. 23:45

 

■오늘도 강추위는 이곳을 맹폭 중이다. 도시는 확실히 한파에 기가 죽었다. 출근할 때는 분명 어제보다 확실히 덜 춥게 느꼈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온이 더 떨어져 한낮에도 체감온도가 영하 18도였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우니 얼마 전 뉴스에 보았던 '사막에 눈 내리는 일'처럼 계절이 역전된 황당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혹서와 혹한은 연료비 증가와 연동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여름과 겨울나기는 21세기 판 보릿고개를 넘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래봐야 가는 계절의 끝자락일 뿐이야"라며 정신 승리를 위한 자기세뇌 말고는 딱히 대응방법이 없다. 퇴근 후 귀가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온몸을 감싸는 따스한 온기, 그건 결코 사소한 게 아니라 선택받은 행복감임을 잊지 말아야겠다.■출근해서 막 컴퓨터를 켰을 때 갑자기 문을 열고 비서실장이 들어와 깜짝 놀랐다. 원래 이번주까지 학습휴가를 냈기 때문에 다음 주에나 출근할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가 휴가를 반납한 것도 한파 때문이었다. 깜님은 아들 만나러 유럽에 가 있고, 한파는 연일 계속되는 상황에서 행여 각급 학교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걱정돼서 휴가를 반납했다는 것이다. 그다운 결정이다. 다행히 지금은 방학 중이라 한파로 인한 피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가스비, 전기세, 기름값 폭등을 두고 현 정부 관계자는 "전 정권의 에너지 포퓰리즘 때문에 낮춰 잡았던 각종 요금을 이제 비로소 현실화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전 정권도 잘한 게 별로 없지만, 이놈의 정권은 어떻게 잘못된 모든 것을 전 정권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렇듯 후안무치한 정권은 보다 보다 처음이다. 질 낮은 코미디가 매일 펼쳐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그 황당한 쇼를 봐야 하는 일은 무척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기존 소설 문법과는 확실히 다른, 젊은 작가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묘한 감성과 감각, 생각보다 신선한데....

 

―수정아, 저 바깥에서 너는 계속 갈 수 있겠지. 네가 그러리라는 것을 너도 알잖아. 여긴 너무 괴롭고 이상한 곳이야.

―상관없어. 나는 여기서 너를 만났고, 네가 나를 구했어.

―아직 아니야.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있어.

―그러지 마.

모든 게 거짓으로 이루어진 곳에서는 무너지는 것들만이 진실이겠지. 수정아,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려. 사랑해. 우리가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 사계절(2021), 96~97쪽

 

―깨끗이 쓸어버린다… 라고들 하지. 그러나 내 오랜 경험에 미루어 보건대 ‘깨끗이’ 쓸어 낸 자리란 없지.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언가들을 다 죽이고 나면 언제나 그들의 잔해가 남지. 부서진 조각들과 흘러나온 액체들로 그 ‘어딘가’는 오히려 더 엉망이 되곤 하지.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망치게 되는 경험.

―망친 게 아니야.

―그럼?

―구한 거야. 이룬 거야. 최선을 다했기에 흔적이 남은 거야.

―그럼, 잔해를 떠안고 살아가. 고약한 피 냄새에, 무질서에 익숙해질 각오를 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착각하면서.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경고야?

―…….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이름을 실제로 바꾸어 부르겠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게 되겠지.■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 사계절(2021), 108~109쪽

 

언젠가 봄과 가을이 편지를 주고받는 그림책을 읽은 적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각각 어린아이로 의인화한 그림책에서, 봄이는 어느 날 갑자기 가을이를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봄이는 고민 끝에 편지를 써서 여름이에게 전달을 부탁하고, 그 편지를 받은 가을이는 겨울이에게 답장을 부탁해 그런 방식으로 둘은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연인이라니, 무슨 수를 써서도 만날 수 없는 친구라니, 얼마나 가슴 아픈지?

나는 그런 존재는 차라리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봄이와 달리 가을이에게는 심지어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단잠에서 깬 몽롱한 늦여름의 오후, 그 애(가을이)는 평생 지속해야만 할 괴로운 사랑을 통보받은 것이다. 그것이 저주와 뭐가 다른가? ■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 사계절(2021), 117~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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