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9-18-日, 맑음) 본문

어찌 보면 나는 ‘성공적인 사랑’을 못해 본 게 분명하다. 사실 성공이란 단어가 무척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 내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여러 번 사랑의 신열에 들떠 보긴 했지만, 끝까지 간 사랑은 결국 없었다. 심지어 결혼조차도.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 인생에서 첫 번째 만난 여자친구는 K다. 눈이 크고 성격이 활달했던 그녀와 햇수로 3년을 교제했고 처음으로 입맞춤도 했다. 희한한 건 그녀와 사귀면서도 사소한 일로 다투고 잠시 만나지 않을 때, 다른 학교 여학생(인천여고) J와 교제를 시작했고, 새롭게 시작한 J와의 연애가 끝나자 다시 K와의 관계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K와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긴 했지만 3년 내내 관계가 이어졌다는 점. 대학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는데, 헤어지게 된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퍼피 러브!
두 번째 사랑은 늦은 통학길에 만난 간호전문대학생 H와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 한집에서 자란 오랜 친구였다. 물론 고3이 될 때까지 서로 만난 적이 없어서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버스에서 우연히 인화여고 교복을 입은 그녀를 보게 되었다. 단아한 모습의 그녀가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나는 K와 교제 중이어서 특별히 신경 쓰진 않았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 학기를 보낸 어느 날, 동인천행 버스에서 그녀를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그때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내려야 할 동인천에서 내리지 않고 신흥동(그녀가 다니는 간호전문대학이 그곳에 있었다)까지 무턱대고 따라갔다. 정거장에 내려서 앞서가는 그녀를 불러 세운 후 나는 다짜고짜 “저기…… 혹시 저 누군지 모르세요? 나는 그쪽을 아는데…… ○○ 씨 아니세요?” 하고 물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맞아요. 그쪽에 대해서는 엄마와 언니들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표정을 보니 그녀도 내심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시작한 사랑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8년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어느 순간 애인이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와 만나면서도 같은 대학 후배를 비롯해서 두어 명의 여성과 교제를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서울성모병원 수간호사 생활을 끝으로 간호사 생활을 정리하고 지금은 유명한 도예가가 되었다.
(H와 애매한 관계가 이어지는 동안) 세 번째 만난 여성은 영문과 후배 S였다. 고등학교 후배가 소개해 준 친구였는데, 말이 잘 통했고, 제주 여행도 함께 한 정말 사랑했던 친구였다. 하지만 활동의 노선이 달라 (선배의 강요에 의해) 헤어지게 되었다.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선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년을 휴학해야 했다.
네 번째 만난 여성은 나보다 선배(연상)인 후배의 언니였다. 별로 말이 없고, 무척 헌신적인 여성이었다. 힘들고 지쳤을 때 가장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베풀어준 누나였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미안하다. 헤어지고 나서도 잘살기를 기도한 유일한 여성이다.
다섯 번째 여성은 같은 교회에서 함께 청년회 활동과 청소년부 교사를 하던 J였다. 눈이 크고 행실이 다소곳한, 그야말로 부모님들이 좋아하실 전형적인 동양 미인이었다. 우리 부모님 역시 그녀를 무척 좋아하셨다. 일단 신앙심도 좋고 예의 바른 모습의 그녀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현모양처형 인물이었던 그녀는, 당시 나와 같은 불확실한 미래의 청년을 만나서는 안 되는 여성이었다. 그러기에는 그녀가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헤어지고 난 이후 상처는 그녀가 크게 받았다.
모든 이성들과 관계가 끝나면 항상 H에게 돌아왔다. 늘 그녀는 같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녀와는 대학 졸업 이후에도 관계가 이어졌다. 내 대학 졸업식에 그녀가 와 주었고, 그녀의 졸업식에 남자 친구 자격으로 가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친해져서 그런 건지 관계의 매너리즘에 빠졌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성을 만난다기 보다는 격의 없는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와는 스킨십이 거의 없었다. 목욕하고 나올 때 수건까지 갖다주고 원피스 지퍼도 올려주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하지만 확실히 그녀는 나와 가장 깊게 교감하고 많은 대화를 나눈 여성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녀도 나도 그때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
여섯 번째 여성은, 지금은 헤어진 내 아내였다. 아내와는 대학원에서 만났다. 귀엽고 애교가 넘치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묘한 반전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게다가 함께 문학을 하고 있던 친구였으니 더욱! 물론 나에게 관심을 두고 마음을 표현한 건 그녀 쪽이었다. 당시 우리는 노동운동 조직에 각각 소속된 활동가들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대화가 통했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움직였다. H의 언니 결혼식에 교제 중이던 아내와 동행했는데, 그때 H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물론 겉으로는 축하한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이후 그녀는 독신주의를 선언했고, 몇 년 후, 간호사를 그만두고 도예가의 길을 걷는다고 연락해 왔다.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미혼으로 사는 걸 보면 그녀의 선언이 말 뿐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그때 가족끼리도 아는 사이고 어릴 때의 추억도 상당 부분 공유하는 H와 결혼했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부질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그녀와의 추억이 가장 깊고 선명했던 모양이다.
아내와 냉전 중일 때, 여성 후배 L과 자주 만나 술 마셨고, 아내와 헤어진 뒤에는 12살 아래 O와 동갑내기 M, 두 명과 사귀기도 했다. 물론 이 때는 동시에 두 이성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한 관계가 정리된 후에야 비로소 다음 관계를 만들었다. 아무튼 이렇듯 기억을 정리하고 보니 나에게는 바람둥이 기질이 농후했던 것 같다. 물론 정작 나 자신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다만 금방 사랑에 빠지는, 요즘 애들 말로 '금사빠'였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늙어버려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비록 성공한 사랑은 하나도 없지만, 마음의 격동까지 사라진 건 아닌데..... 이번 생은 글러 버린 것 같다.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던 모든 애인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받은 상처도 준 상처도 다 내 탓이고 내가 못났기 때문이라는 걸 지금이나마 밝혀 둔다. 그러니 나의 '착한' 시들이 가증스럽더라도 부디 이해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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