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Happy birthday to me! (8-29-月, 종일 비) 본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울리는 카톡 알림음이 아니었다면 종일 생일인 줄도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박남춘 전 인천시장과 도성훈 교육감이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오늘이 내 생일인 줄 알게 되었다. 달력을 확인하니 오늘은 음력 8월 3일, 나의 생일이 맞았다. SNS가 나 대신 생일을 지인들에게 공지한 셈이다. 가입 당시 입력한 신상 정보를 기억했다가 이렇듯 카톡 화면에 띄우는 것이다. 나 역시 지인들의 생일을 카톡을 통해 알게 된 경우가 여러 번이다. 묘한 마음이 되어 운동을 다녀왔더니 서너 통의 축하 메시지가 더 도착해 있었다. 그중에 셋은 카톡으로 선물까지 보냈다. 받은 건 빚이다. 그들의 생일에 나도 뭔가를 보내줘야 한다.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안 받고 안 주는 게 가장 마음 편한 일이다.
물론 나를 생각해 일부러 선물을 보내준 그들의 마음이 불편하다는 건 아니다. 그 마음들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필요한 소중한 정(情)이자 의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배려의 마음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무척 고마운 일이다. 다만 나로 인해 지출과 선물 전송 과정의 불편을 일부러 감수한 그들의 수고가 과분하고 미안할 뿐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마음의 빚을 지고 산다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을 지니고 살아가는 한 그 사람과의 관계는 끈끈하게 이어질 테니 말이다. 그 정도의 부담감은 타인과의 관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늘 배려하고 연민하게 만드는 계기도 될 것 아닌가.
이미 나는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훨씬 많은 장년의 사내다. 60년의 삶은 무척이나 다채로웠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할 때도 있었고, 심장이 무너지는 듯한 극도의 절망과 패배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잃은 것과 얻은 걸 하나씩 상쇄하면 어느 쪽이 더 많은지는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은 행복도 불행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내 삶의 한 측면이라고 생각하며 살 뿐이다. 이제껏 내가 경험한 그 모든 행복과 불행보다 더욱 강도 높은 행, 불행을 경험하게 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설사 있다 해도 그것이 남은 내 생의 좌표를 바꾸게 할 만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소망이 있다면, 엄마처럼 정갈하게 아버지처럼 미련 없이 생을 마감하고 싶을 뿐이다.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엄마가 전 생애를 통해 보여준 치열하면서도 지혜로운 삶과 죽음에 가까워진 말년에 보여준 의연한 신앙인의 모습은 너무도 비장하게 아름다웠다. 신조차도 그분의 삶에 경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게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 나의 남은 생은 그분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거짓말도 하고 질투도 하며 살아온 삶이지만, 그래도 아직 내가 사는 곳에서 인정받고 살아가고 있으니 썩 잘못 살아온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양한 유혹을 뿌리치고, 절망의 늪과 산을 걷고 오르며 살아온 삶은 화려하진 않지만 비겁하지도 않았다. 하여, 생일인 오늘만큼은 내가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새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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