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10월 2일 토요일 본문

일상

10월 2일 토요일

달빛사랑 2021. 10. 2. 00:50

수홍 형의 전화를 받고 구월동 밴댕이 골목을 다녀왔다. 구월동에서 술을 마시면 대개는 갈매기를 가는데, 형은 갈매기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먹을 만한 안주가 별로 없다는 게 형이 갈매기에 가지 않는 이유다. 결국 형의 단골집을 찾아가기로 했는데, 거짓말 안 보태서 가는 데마다 전부 문을 닫거나 폐업을 했다. 아마도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영업 부진 때문일 것이다. 할 수 없이 근처 회집에서 술을 마셨다. 둘이서 중자를 시켰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결국 남겼다. 형과는 참 오랜 세월 교류해왔다. 20대 후반부터 만나왔으니 어언 30년 넘게 만나온 것이다. 형이나 나나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더욱 친해졌다. 약간 허세가 있긴 하지만, 형은 욕심은 없는 사람이다. 베푸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 술을 마시면 항상 판을 키우는 성격이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불러내지 않았다. 형이나 나나 나이가 들어 이제 청승이 많이 늘었다. 같은 무용담 혹은 후일담을 수십 번 반복해도 누구 하나 지겨워하지 않는다. 화류계의 낭만과 그 허무함을 알려준 것도 사실 형이다. 오늘은 “문 시인, 인생 뭐 있어? 이렇게 맘에 맞는 사람과 술 한 잔 하고 집에 들어가 쉬는 게 제일 행복해. 남은 인생 그렇게 살다 가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어울리지 않게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인생에는 그밖에도 더 많은 것이 있지만, 나는 “그럼요.”라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어도 만나면 편한 사람, 서로에게 특별히 부끄러운 것도 없어 편한 사람, 형은 그런 사람이다. 너스레를 떨면 들어주고 가끔 다시 추억하는 무용담 중  기억과 다른 내용이 나와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는 사이, 함께 늙어가고 함께 수다스러워지는 사이, 서로의 지질함과 일탈에 대해 눈감아 주는 사이, 서로의 성취에 질투하지 않는 사이, 오래 보지 않아도 크게 궁금하지도 않고 연이어 만나도 지루하지 않은 사이, 우리는 그런 사이다. 

 

회집을 나와 엘피 바 비틀즈에 들러 음악을 듣다 왔다. 형은 임지훈의 노래를 주로 들었고, 나는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를 들었다. 술을 마신 50대 후반과 60대 사내들이 잠시 추억에 젖어보는 순간이었다. 가방 속에서는 먹다 남아 포장해 온 광어회가 먹기 좋게 숙성되고 있었을 것이다. 노래를 듣다 보니 가슴이 격동되었는지 형은  "문형, 3지구 신안홍탁에 가서 한 잔 더할까?" 하고 물어왔지만, "아니요. 지금 딱 좋아요." 하며 거절했다.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이런 경우 늘 나의 판단이 언제나 옳았다는 걸 형도 알기 때문에 "그래? 맞아. 더 마시면 좀 힘들어지겠지?" 하며 공감의 눈빛을 보냈다. 맥주 다섯 병을 둘이서 나눠 마시고 비틀스를 나왔다. 택시를 잡아 형을 보내고 나는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 10월인데도 늦더위가 느껴졌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