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6월의 마지막 월요일, 비는 내리고 본문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7월의 목전입니다.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스로 가슴을 연 푸른 바다가 우리의 희망, 우리의 신념일 게 분명한 ‘내가 바라는 손님’을 출렁이는 푸른 물결에 실어 이곳에 닿게 해준다면 좋겠습니다. 청포에 올올이 스민 고달픔일랑 우리의 그리움과 반가움으로 씻어주며 미리 준비해 둔 은쟁반 위의 청포도를 두 손에 푸른 물이 들도록 ‘그’와 함께 먹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름이 깊습니다. 나의 기다림은 여름보다 깊습니다.
갈매기는 한결같이 반가우면서도 불편합니다. 내가 보던 테이블, 내가 보던 메뉴판, 내가 보던 화장실 앞 화단의 이름 모를 꽃, 내가 보던 사람들.... 그러나 여우비 내린 오늘,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앉아서 술 마셨습니다. 가고 싶어 간 건 아니었어요. 다인아트 윤 대표에게 원고 뭉치를 전해줘야 했는데, 교육청까지 찾아오도록 하는 게 무척 미안했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내가 그녀의 집 근처 갈매기에 원고를 갖다 놓기로 한 것이지요. 그녀가 아니었어도 그렇듯 배려를 했겠지만, 배려 때문에 원치 않는 술을 마셨습니다. 또 다른 배려가 있었습니다. 목이 말랐으니 한 병쯤은 마실 수 있었지만, 두 병째 막걸리를 주문한 것은 순전히 자릿값을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배려의 마음 때문입니다. 두 시간을 혼자서 마셨지만 오마고 하던 미경이도 나타나질 않고, 혁재는 주안 쪽에서 술 마시다가 9시쯤이나 되어야 갈매기에 들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막걸리 두 병 값만 계산하고 미련 없이 일어나 집에 왔습니다. 집에 도착해 세수를 하고 나니 그때야 비로소 혁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왜 가셨어요? 나 지금 갈매기에 도착했어요." 반갑고 고마운 전화였지만, "응, 피곤해서 먼저 왔어. 네가 언제쯤 올지도 모르겠고."라고 말을 했지요. 혁재는 "간다고 했잖아요. 네, 알았어요. 쉬세요."라고 말을 했고, 나는 "응, 나중에 봐'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삶이 걸린 문제에서 매번 타이밍이 어긋난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이 아니어도 혁재를 자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나는 만남을 위해 일부러 전화하지 않습니다. 물처럼 흐르다 자연스럽게 만나면 반가운 거지요. 그래서 안타까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은 편하게 잘 거예요. 엄마방에서 잘까 생각 중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마방에서 자면 숙면을 합니다. 오랜 불면을 안고 사는 나로서는 엄청난 매력이자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제 내 몸은 막걸리 두 병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워합니다. 오늘 나는 두 병을 마셨습니다. 그리 취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맨정신도 아니지요. 요 정도의 취기와 피로함이라면 좀 더 감당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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