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선택장애를 치료할 수 있을까 본문
나이가 들면서 나는 심각한 선택 장애를 앓고 있다. 처음에는 이 장애가 유전이라고 생각했다. 남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부모님이 물려준 성정이라 여겼다. 하지만 부모님은 경우가 달랐다. 두 분 모두 타인에 대한 온정이 많으셔서 남의 부탁을 받았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승낙하곤 하셨지만 그러한 성정이 나에게는 돌연변이 형태로 유전되었는지 장애가 되었다.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승낙했다가 선택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매운 걸 알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겨자를 먹는다. 부모님의 선택은 온정이었지만 나의 선택은 불편함을 못 견디는 성격이거나 거절했을 때 입게 될 이미지의 상처 때문이다. 이처럼 부모님의 성정과 나의 성정은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나의 선택 장애를 배려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우유부단함을 온정과 배려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선택 장애로 인한 부작용은 여러 방면에 걸쳐 나타난다. 소심한 A형인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승낙한 사안들을 두고두고 고민한다. 하기 싫은 일을 떠맡거나 경제적 부담이 되는 일을 덜컥 수락하고 후회를 지속하다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도와주고도 욕을 먹는 형국’으로 사태가 정리될 때도 있다. 그래서 기왕의 선택에 대해서는 빨리 ‘약속의 유효기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의무감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능력 밖의 일을 떠맡았을 때 겪는 마음의 부담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잡지나 신문을 구독해 달라, 후원금 CMS를 신청해 달라, 심사를 맡아달라, 위원을 맡아달라 등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물론 이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직면하는 선택의 상황 말고도, 가족 간의 문제도 있고, 전자제품이나 생필품, 심지어 작업 공간 등을 고를 때도 고민하긴 마찬가지지만, 이럴 때는 나 혼자 속을 끓이면 될 뿐 타인과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다.
본디 어딘가, 혹은 무엇인가에 구속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내 성정이 혹여 사회성 부족 때문이거나 타인과의 교감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를 고민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할 때가 아니라면 나는 비교적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고자 무척 노력하는 편이다. 크게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불편하게도 하지 않는다. 물론 사회생활은 내가 원하는 선택과 결정만으로 해나갈 수는 없다. 원치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부담이 되긴 하지만 이타적 성격의 일이거나 결과적으로 나 자신의 인식을 확장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런 일은 기꺼이 수용할 용의가 언제나 있다. 다만 앞에서 즉시 거절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 잠깐의 어색함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상대도 나도 별다른 상처 없이 무마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맘에 없는 선택을 함으로써 오래도록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는 것은 무척이나 소모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일단 (경제적 지출과 맡은 일 서너 가지를 포함하여) '사회적 몸피'를 줄여볼 생각이다. 선택 장애를 앓고 있는 소심한 A형이 '관계의 다이어트'를 실행에 옮기는 일은 무척 곤혹스럽고 힘든 일이겠지만, 마음의 피로를 해소하고 정신적 평안을 얻기 위해서 기필코 실행에 옮기려 한다. 자발적 배려와 강제된 선택은 분명 차이가 있다. 내 나이 얼추 60, 읽고 싶은 책 읽고, 쓰고 싶은 글 쓰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돕고 싶은 사람 돕고, 싸우고 싶은 놈들과 싸우며 분개하고, 놀고, 공부하고, 감동하고, 까불기에도 빠듯한 (남아 있는) 삶 속에서 더는 감정을 불필요하게 소모하고 싶지 않다. 바람직한 관계라면 상처와 부담을 함께 져야 하는 것이지 한 사람이 독박 쓰면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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