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가족 묘역 봉분 정비ㅣ문화현장 편집회의 본문
엄마가 가족묘에 드신 지 4개월 만에 묘역의 떼를 손질했다. 산 사람으로 따진다면 덮고 자는 이불 홑청을 수선한 셈이다. 나는 출근 때문에 가지 못했고 부지런한 동생이 앞장서서 수고했다. 요즘은 대부분 화장한 후 납골하는 것이 추세다. 그래서 다른 묘역의 봉분들은 분양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 가족 묘역은 아버지를 매장한 후 봉분을 올렸기 때문에 다른 묘역의 봉분보다 봉긋하게 솟아 있다. 봉분이 높다 보니 볕의 방향에 따라 그늘지는 곳이 있다. 그곳의 떼는 제대로 자라지 못해 붉은 흙을 드러낸다. 상석을 기준으로 오른쪽 경사면의 떼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다. 봉분 전체의 떼를 다시 심는 비용을 관리 사무소에 물어봤더니 40만 원이 든다고 했다. 윗부분의 떼는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데 굳이 다 갈아엎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내 말에 아우도 공감했다. 그래서 10여 모의 떼를 사다가 직접 심은 것이다.
떼를 다 옮겨 심은 후 아우는 묘역 사진을 보내왔는데, 손재주 좋은 아우의 정성과 수고가 사진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내일 인천에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떼를 심기에 오늘이 적기였다. 엄마와 아버지에게 새 이부자리를 장만해 드린 듯 마음이 뿌듯했다. 생전에 최선을 다해 모시지 못하고 사후에 각종 치레를 하는 어리석은 자식들이란 소리를 듣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기억하고 있어요’란 부모님을 향한 마음만은 포기할 수가 없다. 더구나 가족 공원 안에는 수천 개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는데, 갈 때마다 관리한 묘역과 그렇지 않은 묘역이 확연하게 대비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망자들 사이에도 자존심 싸움이 있다면 적어도 우리 부모님만큼은 다른 망자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살뜰하게 챙겨드릴 생각이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민예총에 들렀다. <인천문화현장> 편집회의 때문이다. 내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후배들의 노고와 열정에 누가 되고 있지나 않은 건지 자꾸만 의구심이 든다. 일찍 도착한 후배에게 넌지시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더니, 후배는 무슨 소리냐며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정말이지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고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아서라고 말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정말로 후배들에게 내가 필요하다면 부족하더라도 힘을 보탤 수밖에. 일단 사임은 유보했지만, 그간 맡아왔던 꼭지의 콘셉트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 뿐, 좀처럼 ‘이거다’ 하는 게 잡히질 않는다. 걱정이다.
회의를 마치고 갈매기에 들러 간단한 뒤풀이를 했다. 10시까지 하는 술집에 8시 30분이 넘어 도착했으니 간단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10시에 나오면서 함께 한 후배들은 술이 모자랐는지, 민예총에 다시 가서라도 술 한 잔 더하자고 했으나, 너무 피곤해서 거절했다. '선배가 술을 거절하다니, 많이 변했네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젯밤과 오늘 새벽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곤하기도 했고, 솔직히 술도 이미 얼근했다. 건강을 위해서 삼간 게 아니라 체력과 컨디션이 따라주질 않은 것이다. 아쉬워하는 후배들을 다독여 함께 전철역까지 걸어와서 차에 올랐다. "지금은 아쉬운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집에 도착하거나 내일 아침 일어나면 형의 판단에 고마워 할 거야."라고 말했더니 후배 하나가 "절대 그럴 일은 없어요"라며 여전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술은 오늘처럼 아쉬운 듯 마셔야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런 기조는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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