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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그들이 왔다 간 후 종일 비는 내리고 본문

일상

그들이 왔다 간 후 종일 비는 내리고

달빛사랑 2021. 3. 27. 00:09

 

혁재와 근직이가 술을 사 들고 집에 왔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술 마시다 함께 왔다. 교육청에서 퇴근하고 민예총 총회까지 1시간 20분가량 시간이 남아 갈매기에 들렀다. 혁재가 막 도착해 막걸릿잔에 첫 잔을 따르고 있었다. 합석해서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총회에 참석했다. 총회는 9시쯤 끝났고 뒷정리를 한 후 갈매기에 들렀더니 그때까지 혁재는 가지않고 있었다. 근직이도 함께 있어 반가웠지만 30여 분 앉아 있다 나와야 했다. 거리두기 2.5단계를 2주 더 연장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어제 잠을 못 자서 무척 피곤했기 때문에 술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혁재와 근직이는 술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혁재는 술을 사서 예술회관 광장에서 마시자고 했지만 싫다고 했다. 만약 그랬다면 몸살 걸렸을 것이다. 근직이는 은준이네로, 혁재는 성재네로 각각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다 “정 그렇게 더 마셔야 한다면 우리집으로 가자.”라고 제안했다. “그래도 되겠어요?” 근직이가 물었고, “나는 내일 일찍 일을 가야 해서 근처에서 먹어야 해요.” 혁재가 말했다. “택시 타면 10분인데 뭐. 아무튼 알아서 해.” 내가 대답했다. 그때 마침 택시 잡기 어려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빈 택시가 우리 앞에 행운처럼 멈췄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집앞에 도착해 나는 먼저 올라오고 혁재와 근직이는 마트에 들러 술과 안주를 사느라 나중에 올라왔다. 막걸리 세 병과 소주 한 병, 물만두와 마른안주가 식탁 위에 올랐다. 기분 좋게 수다 떨며 술을 마셨다. 근직이는 집안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며 “와, 무슨 집이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좋네요. 자주 와야겠어요.” 웃으며 말했다. 10시면 술집이 문 닫아야 하는 거리두기 단계가 지속될 경우, 후배들은 앞으로도 여러 번 우리집에 와서 부족한 알코올을 보충하게 될 것이다. 다음 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부담만 없다면 늘 환영이다. 다만 조건을 붙였다. “밤새 술 마시는 건 좋은데, 잠은 집에 가서들 자라. 만약 어쩔 수 없이 우리집에서 자게 된다면 나와 함께 일어나 아침밥 먹고 돌아가야 해. 오전 내내 늘어져 잠자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근직이가 “그럼요. 잠은 집에서 자야지요.” 하며 아내 있는 남편답게 말을 했다. 안심이 됐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12시 30까지 술을 마셨다. 최근 발행된, 내 시가 실린 잡지를 책꽂이에서 뽑아서 혁재와 근직이는 시를 낭독했다. 1시쯤, 혁재에게는 만 원, 근직이에게는 만오천 원, 택시비를 주어 돌려보냈다. 안 받겠다고 거듭 사양했지만 내가 맘이 편치않다고 하자 마지 못해 받았다. 후배들이 돌아간 후, 문을 열어 환기하고 식탁을 정리한 후 죽은 듯이 잠을 잤다.

 

7시쯤 일어나 테라스에 나가 보니 비 내리고 있었다. 숙취는 없었다. 비까지 내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요 며칠 미세먼지 때문에 숨도 못 쉴 지경이었는데, 봄비가 내리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뭐, 원래 비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아침에는 어제 오후, 택배로 도착한 포기김치를 정리했고, 먹던 김치로는 참치를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근직이가 알려준 레시피로 끓여봤는데, 무척 맛있었다. 가게에서 사 먹는 찌개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소하고 신문 보고 메일 열어 확인하고 화초들 물을 주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보니 오전이 다 갔다. 오후 내내 비 내렸다. 잠깐 잠을 잤고 창문을 열어 보니 여전히 비 내렸다. 저녁에는 떡국을 끓여 먹었다. 여전히 비 내렸다. 영화 두 편을 보고 난 지금까지 기특하게 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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