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사랑을 하려면 취중진담을 조심하세요 본문
얼마 전 후배가 “선배님은 연애 안 하세요.”라고 물었다. 혼자 산 지 오래되다 보니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 자리에서는 “그냥, 혼자 지내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라고 대답했지만, 사랑에 대한 특별한 정신적 외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왜 연애에 대한 나름의 로망이 없겠는가. 하지만 현실적 조건이 그럴듯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레 선을 긋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 문득 로맨틱하게 마주하게 될 연애의 상황을 그리는 모순이라니. ‘외적인 조건을 따지지 않고 그냥 내 정서적 코드에 매력을 느끼거나 공감하는 이성이 있다면 그녀와 사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은 해보지만, 사실 이러한 생각은 무척 이기적이다. 분명 나 역시 상대방에게 일정한 기준을 들이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역시 똑같은 크기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법이라면 세상에 ‘짝사랑’이란 단어는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세상에는 접수되지 않은 사랑 때문에 마음을 다치거나 앓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숱한 환상과 로망의 서사들이 지금도 허다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 게다.
어느 날, 이성이 예상치 못한 고백을 해온다거나 팔짱을 끼고 포옹을 하는 등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할 것 같은’ 신체접촉을 해왔을 때 완강하게 봉인했던 마음의 자물쇠가 툭 하고 풀리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술자리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면 대개는 믿을 게 못 된다. 술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마음을 교묘하게 위장할 수 있게도 한다. 취기는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고 믿는, 사람들의 그 근거 없는 믿음의 빈 지점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취한 체하기도 한다. 천연덕스러운 쇼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훔쳐보려는 앙큼한 시도인 셈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 쇼를 믿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는 한다. 실력 좋은(?) ‘꾼’은 자기 자신도 제 연기에 속을 정도로 그럴듯한 연기를 할 줄 안다. 이 천연덕스러운 재능은 쉽게 그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긴 하지만, 사랑 앞에 선, 아니 사랑을 하고 싶은 세상의 모든 연인은 이미 정서의 무장해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교활한 재능의 희생자가 되곤 한다. 그래서 사랑은 힘들다. 힘들고 안타까운 마음이 종종 그리움이라 윤색되어 마음을 격동하게 하고, 비감한 마음은 소설 속 주인공의 로맨틱한 비애처럼 느껴지면서 아픔조차 기꺼운 마음으로 접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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