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선물처럼 주어지는 짧은 가을의 시간들 본문
처리해야 할이 무척 많다. 그동안 온 신경이 아픈 엄마에게 쏠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복잡한 머리를 단순하게 만들어 줄 음악이나 영상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영화도 진지하거나 무거운 영화는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노화의 결과인 엄마의 불편함은 쉬 회복될 것 같지 않기에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아픈 몸과 모진 세월을 다독거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너무 요란을 떨지 않기로 했다. 살피며 묻고 다독이고 어르며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감당해야 할 일상과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갈 것이다. 일단 이번 달이 마감인 세 종류의 잡지에서 청탁한 시 5편을 선별, 정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천문화현장』에 게재할 원고를 완성해야 하는데, 이 원고는 걱정이 태산이다. 이전처럼 공연을 자유롭게 보러 다닐 수 있는 처지도 아닐뿐더러 코로나 여파로 많은 공연이 취소되거나 비대면 공연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쓸 ‘거리’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직접 현장에서 본 공연이나 전시가 아닌 경우 해당 공연이나 전시 리뷰를 쓰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감상자 입장도 이렇게 난감한데 무관중 공연을 진행하거나 그나마 전시조차 취소된 예술가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무튼 미증유의 상황은 나만 만났던 게 아니므로 상황을 핑계로 원고 쓰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변명처럼 들릴 게 뻔하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작성하면 될 일이다. 아침저녁으로 날씨는 무척 쌀쌀하지만, 그래도 한낮의 하늘은 기분좋게 푸르다. 선물처럼 주어지는 짧은 가을의 저 청청한 하늘빛을 온전히 만끽하며 10월을 보낼 생각이다.
10월
―부끄러움은 예상치 못한 취기처럼 늘 변명거리를 지니고 있지
아직 어제이거나 이미 내일인 뫼비우스의 시간 속을 걷고 걸었다 사물의 졸음을 털어내며 아침이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엄마의 기도는 이미 어제의 일 아버지는 이슬 젖은 묘석에 걸터앉아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까 죽어서도 자주 잊히는 여름에 떠난 가엾은 아버지 여름과의 담판 끝에 제 몫의 시간을 얻어낸 가을은 낯선 바람 앞세워 이곳을 찾고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자주 대견한 다짐과 쉽지 않은 결심을 하곤 했다 시를 잊고도 여름 내내 외롭지 않았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빛을 흘리는 스탠드 불빛 아래서 안온했다 사람들 마음속에 함부로 들어가 탱자나무나 며느리밑씻개를 심어놓고도 여전히 안녕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열흘 만에 돌아온 엄마조차 눈을 뜨자마자 내 안부를 물었다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었다 10월의 새벽 앞에 이렇게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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