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행복한 의무감 혹은 즐거운 기다림 본문
오랜만에 갈매기에서 조구 형을 만났다. 형이 이 미증유의 ‘바이러스 시국’에 술집을 찾다니... 그것이 나에게는 다소 무모해 보였다.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이요, 술집의 특성상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그것이 감기든 바이러스든 감염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은 나 때문에 갈매기에 들렀을 것이 분명하다.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한동안 격조했기 때문에 우리들만의 ‘행복한 의무감’이 발동했을 것이다. 그 점에서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월요일에 형이나 혁재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면 일부러 시간 내서 들르는 일이 지금처럼 많진 않을 것이다. 나는 비록 소년은 아니지만 오후 네 시에 여우를 만나기로 한 어린왕자가 오후 세 시부터 마음이 설레듯, 혹은 황지우 시인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시 구절처럼 술집 문이 열릴 때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의 심정이 되곤 한다. 그리고 오늘, 늦지 않은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너일 것이다’가 아닌 ‘분명한 너’였기 때문에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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