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2월을 보내며 본문
겨울과 봄을 잇는 마지막 징검다리, 2월의 마지막 날 나는 집안에 머물며 세 끼를 모두 먹었고 하루 종일 1리터 가량의 물을 마셨으며 두 편의 영화를 보고 한 편의 완결되지 않은 시를 썼다. 낮잠도 두어 시간 잤던 것 같다. 꽃대를 내민 벽란의 줄기를 잘라 새로운 병에 수경(水耕)을 시작했다. 도무지 반찬을 먹지 않는 엄마에게 잠깐 짜증을 내기도 했다. 전화는 누나와 대출을 종용하는 텔레마케터로부터 단 두 통 받았을 뿐 하루 종일 조용했다. 카카오 톡을 비롯한 휴대폰 문자 역시 부탁했던 일의 진행상황을 묻는 후배의 문자가 한 통 도착했을 뿐이다. 하지만 뉴스는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바이러스 감염자들의 소식을 숨 가쁘게 전했다. 문밖 세상은 말이 아닌데 문안의 내 세상은 너무도 평온해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뉴스를 보며 혀를 차거나 한숨을 쉬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뉴스를 보면서 감염자들의 안부보다 나와 엄마의 안부가 훨씬 염려되었지만, 다른 재난상황과는 달리 별다른 죄책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아무리 상대를 연민한다 한들 내 신체를 떼어서 그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합리화했다. 문밖의 상황이 긴박해질수록 이런 종류의 합리화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의식 안에서 이루어졌다. 전쟁이 비참한 것은 당장 개인이 겪게 되는 육체적 정신적 상처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조성하는 무관심과 배제가 모든 인간관계를 지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입장이 바뀌게 될 개연성은 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처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상황을 상정하고 당장의 고통 속으로 뛰어 들어가 상대를 끌어안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선을 넘나드는 '치열한 전쟁' 중에 의리와 비겁함을 변별하기란 나 같은 범인(凡人)에게는 얼마나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일일 것인가. 하여 당분간 우리 모자는 치사하고 잔인할 정도로 '이기적인(혹은 이기적으로)' 안전을 고민할 게 분명하다. 날이 바뀌고 달이 바뀌어 새롭게 3월이 시작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나처럼 점점 이기적인 관조자가 되어 가겠지. 하지만,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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