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새벽에 잠이 깨다-어이쿠, 벌써 3월이군 본문
전 날 봤던 영화의 이미지들이 새벽까지 따라붙어 잠을 설쳤다. 다행히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마루 밑 아리에티’였기 때문에 악몽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잠결에, 두어 차례나 봤던 영화의 제목과 배우가 떠오르지 않아 새벽에 일어나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마침내 ‘글래디에이터’와 ‘러셀 크로우’를 생각해 냈다. 이미 잠은 달아난 지 오래다.
가끔 이렇듯 어느 지점에서 기억이 딱 막혀버리는 경험을 자주한다. 그럴 때마다 인터넷 검색이라는 손쉬운 확인 방법이 있긴 하지만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다소 더디고 귀찮긴 하지만 그렇게 복원한 기억만이 온전한 내 기억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렇듯 귀찮은 순간이 잦아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일 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기억들이 하나하나 시나브로 빠져나가다가 마침내 기억의 저장고가 텅 비게 되는 순간,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해 그것을 불러내기 위한 새삼스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안식에 들게 되겠지.
기억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기억하지 못해도 조바심 낼 필요가 없는 영원한 안식(이라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낯설고 두려운), 죽음. 만약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세계가 있다면 혹시 최후로 남은 서너 개의 기억은 그곳까지 따라가게 될까. 차안(此岸)에서의 기억은 영원한 안식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방해가 될까. 방해가 된다면 안식(安息)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새벽, 두서없는 생각들이 널을 뛴다. 다시 잠들긴 다 틀렸으니 밥이나 먹을까. 바이러스 때문에 교회갈 일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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