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새벽비 소리에 잠이 깨다 본문
새벽녘, 투덕투덕 하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옆집 처마 밑 돌출된 창틀 위에서 잠을 자던 천덕꾸러기 비둘기가 내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창문을 열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매일 유투뷰에서 찾아듣던 정겨운 백색소음을 새벽, 책상 앞에 앉아서 혼자 듣고 있으려니 기분이 좋아졌다. 새로운 한 주를 가을비와 더불어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게다가 생색내기 빗방울이 아니라 제법 굵은 비였다. 새벽비는 사람의 마음을 유순하게 만든다. 나에게 서운하게 했던 누군가가 이 새벽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준다면 나는 분명 그를 기꺼운 마음으로 용서할 것이다.(3시 32분)
비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내렸다. 오전 운동을 다녀올 때도 오후나절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에도 비는 내렸다. 부지런히 내린 비는 저녁나절, 주점 갈매기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 비로소 이슬비로 변해 있었다. 술집에 도착하니 혁재가 앉아서 술마시고 있었다. 손님은 혁재를 포함해 세 명 뿐이었다. 가을비 내리는 월요일, 막걸리집의 풍경치고는 지나치게 고즈넉했다. CBS음악FM93.9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공명을 이루며 술집 안을 메웠다. 진행자 배미향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혁재와 나는 홍어를 시켜놓고 막거리를 마셨는데, 좀처럼 취하질 않아 세 병 이상을 마셨다. 각각 두 병을 비울 때쯤 손님들이 들어찼고 세 병을 비울 때쯤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술값을 계산하고 자리를 파하려고 할 때 유 모 박사가 뒤늦게 합석했다. 반갑지는 않았지만 비 때문에, 오로지 비 때문에 웃는 낯으로 그를 맞았고, 소주를 시켜서 손수 한 잔 따라주고 나도 다시 앉아서 한 병을 더 마셨다. 그리고 10시쯤 두 사람만 남겨두고 먼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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