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아우야, 내 소중한 시간을 지켜줄 수 있겠니? 본문
네 편지에 대한 지극히 거칠고 주관적인 답장
내가 누군가의 시를 평가할 입장도 못 될뿐더러, 또한 개개의 작품들은 문학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다 저마다의 세계관이 담겨 있는 법이라서 비평가가 아닌 이상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해당 작품을 봤을 때 울림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느낄 수 있겠지.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조심스러운 게 많은 대중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작품이 훌륭한 것은 아닐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지. 문학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야말로 ‘저주받은 명작’들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작품을 평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이건 너무 진부해서 울림이 없네요.”라든가. “기계적으로 행과 연을 나눈다고 산문적인 글이 시가 되는 건 아니랍니다.”라든가, “시어(단어)가 너무 낭비되었습니다. 좀 더 비유와 상징을 고민하도록 해보세요.”와 같은 평을 상대에게 하기가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구상하는 작업(?)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것을 고민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말 그대로 시인과 생물학자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재밌을 수 있다. 게다가 그 대화를 시로 정리한다는 것은 (그 가능성 여부와는 별개로, 아니 그게 가능하다면) 신선하기도 하겠지. 다만 서로 다른 영역과 장르의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모종의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그리고 일단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아. 내가 과학, 특히 생물학에 대해서 조예가 깊지 않기 때문에 생물학자와 내가 나눈 대화가 과연 독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네가 시를 좋아한다고 하니(시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문학적 글쓰기를 원하는 것인지 기록광인지 판단하긴 애매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내가 이전에 네게 해준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보낸 자료 9쪽에 너도 그것을 언급해 놓을 걸 봤는데, 사실 그건 너뿐만이 아니라 문학적인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 참 어렵지만 네가 지속적으로 뭔가 ‘평가’를 받고자 하는 것 같아서 굳이 말을 한다면..... 전반적으로 (간혹 눈길을 끄는 참신한 글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의 글은 진솔하긴 하지만 문학적이진 않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적’이란 말은 협의로 말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평론가 혹은 비평가들이 봤을 때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글이 아니라는 말이지.
물론 “나는 그저 내 생활을 담담하게 기록할 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나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새로운 삶의 동력을 얻기도 하지요.”라는 정도의 문제의식으로 글을 쓴다면 오히려 어느 순간 네 삶의 경험과 연륜이 글 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읽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이 될 수는 있을 거라 믿는다. 지금처럼 끊임없이 읽고 쓰고 고민한다면 그 시간과 노력이 너에게 답을 주겠지. 그때는 새삼스레 남에게 혹은 시인들에게 “좋은 시를 쓰려고 하는데 어떡하면 되지요?”와 같은, 그야말로 대답이 만 가지도 넘을 질문 같은 건 하지 않겠지. 네가 시인으로 등단하려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서두를 이유가 뭐가 있을까. 긴 호흡으로 한결같이 쓰고 또 쓰면 되는 거지. 건필하길 바란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리고, 나는 네가 말한 방식의 글쓰기(서로 다른 영역의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그 대화를 시로 옮기는 거)에 별로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 내 깜냥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하고 싶지 않아. 나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집중할 때다. 쉽진 않지만, 타인의 평가와는 무관한 나만의 글..... 그때마다 뭔가에 온전히 집중하는 행복한 피곤함과 싫지 않은 부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 당분간 이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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