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자서전을 발간하며 본문
빛바랜 앨범과 때 절은 일기장을 다시 펼치며
-自敍傳 上梓 有感
세상 모든 존재(存在)들에게는 나름의 역사(歷史)가 있다. 생명 있는 존재들부터 저 냇가의 돌멩이까지 제 나름의 생(生)과 그 안에서 치열했던 시간을 품고 있는 것이다. 나무의 역사는 나이테를 통해서 타산할 수 있고, 다양한 금석(金石)조차도 저마다의 결을 통해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생명, 사물 속에 깃든 장구(長久)한 시간의 흔적 앞에서 우리는 문득 숙연해지는 법이다.
나는 이제 여든이 훌쩍 넘어 인생사에 있어서는 제법 오랜 세월을 부박(浮薄)한 세상 속을 견뎌온 나이다. 살아온 삶의 이력(履歷)들을 되돌아보면, 노탐(老貪)을 경계하고 스스로 신독(愼獨)하며 기꺼운 나눔의 삶을 실천하려 노력해 왔기에,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나름의 성취(成就)와 자부(自負) 또한 만만찮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나와 더불어 평생의 삶을 함께 꾸려온 가족과 동료, 지인들의 사랑과 배려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세상의 잣대로만 판단한다면 나는 비교적 성공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전도유망(前途有望)한 기업에 취직을 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남들보다 빠르게 승진을 했으며 당시에는 일부 계층만이 즐길 수 있는 골프를 치면서 그린 위를 누비기도 했다. 말년에는 기업의 대표이사를 넘어 회장이란 칭호를 얻기도 했고, 사회봉사단체의 총재까지 역임했다. 정숙한 아내와 무탈(無頉)하고 행복하게 지금껏 살아왔고, 4남매와 그 식솔들까지 저마다 문제없이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여항(閭巷)의 판단대로라면 이 얼마나 성공한 삶일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은 삶에 대한 크나큰 미련은 없다. 더 많은 것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한(有限)한 인간의 삶이란 본디 무상(無常)한 것이라서 성취와 결과물에 상관없이 말년(末年)에 이르면 허망함이 밀려오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나 또한 천주님 앞에 단독자로 선 미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아닌가.
하여, 나 스스로에게는 노년의 쓸쓸한 감상을 극복하고 자식들에게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을 전해주며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동료와 지인들에게는 함께 살아왔던 그 때 그 시절의 추억들을 환기(喚起)하며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자는 의미로,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나의 삶의 역사들을 정리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정리하는 일이란 가끔 뿌듯하고 자주 부끄러워지는 순간을 감당해 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을 위해 빛바랜 앨범과 먼지 앉은 일기장을 들춰보면서 나는 뿌듯한 감회와 무량(無量)한 감개(感慨)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나왔던 세월은 결코 만만찮은 세월이었지만 나는 모든 난맥들을 돌파하기 위해 나름대로 갈력(竭力)하며 최선을 다했다.
물론 소소한 내 개인사를 글로 남기는 것에 대한 일말(一抹)의 부끄러움은 없지 않다. 하지만 노년에는 노년 나름대로의 꿈과 소망이 있는 법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남은 날들이 얼마나 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는 그날까지 그러한 노년의 꿈들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금껏 그래왔듯 내 몫의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독자(讀者) 제현(諸賢)들에게 부탁하노니 둔필(鈍筆)과 악문(惡文)의 부끄러움을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라.
2018년 12월 ○○일
논현동에서 都岩 李炳九
논현동 대신 택호가 있거나 서재에 이름이 있으시면 그걸 넣으셔도 되고 아니면 삭제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배의 생일, 첫눈 내리다 (0) | 2018.11.24 |
---|---|
회장님과의 인터뷰, 그리고 저녁식사 (0) | 2018.11.23 |
홍(洪)가가 돌아왔다 (0) | 2018.11.21 |
<인천시민문화헌장> 관련 원탁토론회(시청 대회의실) (0) | 2018.11.20 |
감기가 또 찾아왔다 (0) | 2018.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