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상강(霜降)-운유당 서신 본문
늘 가는 편백나무 숲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내려앉고 비 내린다고 당신은 토라진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항암의 후유증으로 발에 감각이 없어져 양말이 벗어진 줄도 모르고 한 시진을 보냈다고 연락을 해오기도 했지요. 그때 당신은 울고 있었습니다.
아픈 여생(餘生)의 향기가 아무리 깊다한들 살아온 삶의 보람과 아프기 전 생각했던 살아갈 시간들의 향기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편백나무 숲 속에선, 드문드문 찾아오는 손님 같은 바람이 불고, 청하지 않은 가을비가 가을가을 내릴 때, 속절없이 무너지는 마음을 수습할 길 없어, 엄마 잃은 짐승처럼 소리 내어 울지도 모를 당신을 생각하면서 나의 가을 한 편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상강(霜降), 국화꽃 위로는 하얗게 서리가 앉고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긴 겨울을 준비하느라 부산해지는 시간입니다. 울면서 숲을 나온 당신의 마음이 한 사찰시인의 시구(詩句) 속에서 다시 한 번 고비를 맞고 있는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도 당신의 눈물 같은 가을비 가랑가랑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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